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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 정치 걱정, 이제 접어도 될까

©픽사베이

도법 스님이 몇 해 전 “전에는 종교가 세상을 걱정했다. 지금은 종교 때문에 국민이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종교가 연루된 갖가지 잡음·추문들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 조계종 화쟁(和諍)위원장 자격으로 한 말이다. ‘세상이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개탄한 것이다.

 

정권교체가 되었다. 지인들과 몇 차례 술자리를 같이 하며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젠 정치 걱정은 그만해도 되겠어”, “앞으론 내 일이나 신경 쓰며 살아야지.”

 

그러면서 기억난 것이 도법의 말이었다. 당시 필자는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지금은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는 사설을 썼던 것이다. 도법의 말을 패러디해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해 칼럼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정치는 여전히 걱정거리였다. 그렇게 판명 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흔한 말로 “걱정도 팔자”라서 일까. 내 걱정이 반드시 개인적 성격 탓인 것 같지는 않다. 정권교체가 됐지만 되레 걱정할 게 더 많아진 듯하다. 어찌된 영문일까? 나는 그 답을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이치에서 찾고자 한다.

 

이 말은 여러 사람들이 사용해 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하다. 심지어 탄핵당해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썼다. 2015년 3월 청년 지도자들을 초청해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에 앞장서 달라며 이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저작권자’는 모른다. 하지만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것은 상식적인 추론으로도 분명하다.

 

©픽사베이

혁명은 무력과 강압을 동원해 저항을 꺾을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은 법과 절차에 따라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게 대전제다. 이게 쉬울 리가 없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개혁이 어렵고 위험하며 성공하기 힘든” 이유를 설명한다.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들이 개혁자에게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도 한다.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데 반해, 그 지지자들은 오직 반신반의하며 행동할 뿐이다.”

 

쉽게 풀면 이렇다. 한 쪽은 죽기 살기로 개혁에 저항하는데 반해, 지지자 쪽은 미지근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혁적인 군주와 미온적인 지지자들은 큰 위험에 처하게 마련이다”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준엄한 경고다.

 

정권교체 후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마키아벨리의 혜안이 돋보인다. 새 정권이 개혁해야 할 거리는 엄청나게 많다. 지난 10년 수구정권에서 쌓인 적폐부터 하나하나씩 청산해야 한다. 검찰개혁, 재벌개혁이 시급하고 국방개혁도 필요하다. 공영방송도 정상화해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만만치 않은 저항이 감지된다.

 

마키아벨리를 조금만 더 인용하겠다. 그는 “무장한 예언자는 모두 성공한 반면,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실패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먼 훗날 중국 혁명가 마오쩌둥의 말로 구체화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순환논리가 돼버렸지만, 그래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거다.

 

5월11일 사드철회 성주투쟁위원회 등 4개 단체 회원들이 김관진 전 장관, 한민구 국방장관 등에 대해 사드 배치 관련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엊그제 드러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발사대 보고 누락 사건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사드 4기가 추가 배치됐다는 데요’라고 묻자 한 장관이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군 통수권자에 대한 항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나는 한 장관이나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의 보고 누락이 문민통제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었다고 본다. 바로 마키아벨리가 말한 ‘적대’와 ‘공격’이었다. 또 이런 저항의 뒷전에는 우리 지배계층 정서에 도도히 흐르는 숭미주의란 적폐가 깔려 있다. 한 관측통은 “우리나라 군 장성들이나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는 미국의 일을 대신하는 한 감옥에 갈 일이 없다는 확신이 있다”고 일갈한다.

 

육군본부 정훈감을 지낸 표명렬 예비역 준장이 군 개혁에 대해 쓴 책 제목이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실감난다. 민주화를 이룩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반개혁적 수구세력들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분야가 너무 많다.” 책이 나온 때가 2003년이다. 그 뒤로 또다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개혁은 어떻게 얼마나 이뤄졌을까? 미미했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도리어 더욱 후퇴한 것 같다.

 

그런 마당에 정치 걱정을 이제 접어도 될 것이란 기대는 헛된 꿈이었다. 꿈도 야무졌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영영 아닐지도 모른다. 2017.06.02 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