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논객닷컴

[논객닷컴] 혁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가

혁명일까 아닐까.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집회 말이다. 많은 기사나 칼럼들이 ‘촛불혁명’이란 표현을 썼는데, 맞는 걸까? 엄밀히 말해 촛불은 사전적 개념의 혁명이 아니다. 혁명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정치적, 경제적 체제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항용 혁명에 수반되는 유혈사태도 없었다.


그럼에도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종의 은유다. 옛것을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세우고 싶은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역사적으론 피를 흘리지 않은 영국 명예혁명도 있었다. 또 중요한 한 가지, 그것이 이룬 엄청난 결과 때문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구속까지 된 것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오로지 촛불 덕분에 가능했다. 그 바람에 대선도 다음달 치른다. 모두가 촛불의 함성, 분노, 열망을 빼놓고는 설명이 안 된다. 오늘 신문에서 ‘구여권(舊與圈)’이란 단어를 마주치면서도 문득 느꼈다. 아 참, 여권이란 개념이 없어졌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다음날인 3월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차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이렇게 정리할 수는 있다. 혁명은 아니었지만 파장은 혁명적이었다고. 촛불집회의 혁명적 성격을 인정할 수 있다고. 그렇지만 촛불 자체는 아직 혁명이 될 수 없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우선 춘래불사춘의 분위기가 보여준다. 적어도 촛불에 참여하고 공감했던 시민들이라면 이 화창한 봄날이야말로 기쁨의 축배를 들 때지만 그렇지 못하다. 필자도 그렇고 여러 사람이 그런 느낌이다. 엊그제 한 교수는 칼럼에 “뭔가 매우 찜찜하고 부족하다”고 썼다. 나는 그 찜찜함의 정체가 불안감이라고 본다.


그 불안감은 역사적 경험에서 왔다. 57년 전 이맘때 발생한 4·19 혁명은 시민·학생들이 피로써 쟁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박정희의 쿠데타로 무참하게 짓밟혀버렸다. 그 뒤 우리를 기다린 건 기나긴 군사독재였다. 실패한 이 나라 최초 혁명은 시민들 마음속에 ‘원체험’ 또는 집단적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나는 신동엽이 1967년 쓴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시도 혁명의 지난함을 노래한 것이라고 해석해 본다.



4.19혁명 56주기를 맞는 지난해 4월19일 서울 강북구 국립4.19 민주묘지를 찾은 유가족이 참배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나쁜 역사는 반복된다. 1980년 맞이한 ‘서울의 봄’도 광주 학살을 저지르고 집권한 전두환에 의해 좌절됐다. 1987년 시민들은 6월항쟁을 벌여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야권 분열로 군사정권은 또다시 연장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혁명과 항쟁에서 승리하고도 앞날을 염려하는 소심증 체질이 된 것이다. 이번에도 “또 무슨 나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이것이 과거로부터 온 불안감이라면, 다른 하나는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다. 우리 삶이 바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촛불에 혁명성을 부여하고 싶은 이유는 분명하다. “바꿔야 할 게 너무 많아서 뒤집어엎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혁명은 수많은 기존 질서를 ‘뒤집어엎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촛불집회는 서울 광화문 광장 등 전국 여러 곳에서 그동안 21차례나 열렸다. 수많은 남녀노소 시민들이 참가해 자기 삶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공감을 나누었다. 비정규직, 실업 문제, 자영업자의 고충 등 매우 다양했다. 이걸 한마디로 함축한 것이 ‘헬조선’이다. 청년실업, 높은 자살률, 노동 착취, 양극화, 잉여인간, 워킹푸어, 삼포세대, ‘노오오오력’, 금수저·흙수저…. 헬조선은 이런 온갖 문제들이 뒤섞인 세상이다.


‘촛불혁명’은 바로 헬조선을 극복하는 문제다. 이게 과연 쉬운 일일까. 혁명만큼, 어쩌면 혁명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역설적으로 그 어려움이 촛불의 혁명성을 입증한다.



©픽사베이


이렇게 난마처럼 얽힌 문제들 가운데 크게 두 가지가 선결과제라고 본다. 정권교체와 재벌개혁이다. 당연히 정권교체가 첫단추가 돼야 한다. 한 달 뒤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촛불혁명’의 성패를 가늠할 중대 변수다. 수많은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시민들은 적폐 청산이니 개혁이니 외치는 후보와 공약들 가운데서 진짜와 짝퉁을 가려내는 예리한 감식안이 필요하다. 집권한 뒤 경제민주화 공약을 깔아뭉갠 박근혜의 경우를 돌아봐야 한다.


그러나 정권교체도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그것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는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대한민국이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재벌개혁이다. 그것만 된다면 온갖 적폐의 절반쯤은 해결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을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집권하면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대목에서만큼은 몹시 회의적이다. 다만 현실정치에서 선거는 차선·차악의 선택이라는 생각으로 위로를 삼는다.


‘촛불혁명’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갈 길이 멀다. 죽 쒀서 개 주면 안 된다. 승리할지 패할지는 오로지 깨어있는 시민정신에 달려 있다. [논객닷컴=김철웅]

017.04.10 1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