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여러 가지 ‘주장’을 하며 산다. 이때 필요한 것이 근거(또는 이유) 제시다. 예를 들자. “대한민국 최고 미남은 장동건이다.” 뜬금없이 이 말만 하는 것은 그냥 취향 고백이다. 이것이 주장이 되려면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미남의 기준은 이러저러하다는 생각을 밝히고, 장동건이 거기에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책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 나오는 말이다. 책은 “주장은 반드시 논증하라”고 말한다.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주장만 하면 억지소리나 궤변으로 들린다.
논증이란 관점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을 보려 한다. 그 결과는 ‘촛불 민심’의 승리였지만, 패자 측의 지리멸렬한 대응이 자초한 것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 자신이 그랬고, 헌재에서 변호를 맡은 대리인들은 한 술 더 떴다.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태극기 집회에서 제기된 색깔론도 설득력이 없었다. 논증은 하지 않고 주장만 했기 때문이다.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선고기일이 열리고 있다. ©포커스뉴스 |
먼저 박 대통령은 논증 자체를 회피한 경우다. 그는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 이건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낭독한 파면 결정문에서 밝힌 해당 부분이다. 결정문은 이 같은 언행을 보면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회피의 이유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이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논증 능력’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리인(변호인단) 구성도 실패작이었다. 법리적 논증을 통한 ‘진검승부’보다는 정치적 공방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논증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재판부에 ‘막말’을 일삼은 김평우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미국의 탄핵소추 사례를 즐겨 제시했다. “미국 17대 앤드루 존슨 대통령 등의 탄핵소추 의결시 하원은 개별 사항별로 투표해 과반수 찬성을 받은 사항만 소추했고, 소추안을 심판하는 상원 역시 개별 사항별로 탄핵 여부를 판정했다”고 했다. 여러 개인 탄핵 사유를 잘게 쪼개서 판단했다는 말이다. 미국은 그렇게 했는데, 우리는 13개 탄핵 사유를 일괄해 표결했으므로,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는 구체적 사유 적시를 요구하는 헌법 65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탄핵 근거 조항인 헌법 65조 어디에도 일괄 표결을 금지하는 내용은 없다. 자기 주장을 위해 견강부회식 법해석을 한 것이다. 또 미국이 탄핵 제도의 국제표준일 수도 없다. 게다가 미국은 우리와는 달리 탄핵 결정을 의회가 하므로, 박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탄핵은 오래 전 끝난 상황이다.
헌재와 국회 소추위원단을 싸잡아 모욕하는 그의 발언에도 논증을 중시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회 소추위원단에 대해서는 “만일 저들이 무고한 대통령을 쫓아내고 조기 선거로 정권을 잡기 위해 이런 사기극을 벌였다면… 그야말로 국정농단의 대역죄인들”이라고 주장했다. 탄핵심판 주심 강일원 재판관을 ‘국회 측 대변인’이라고 모욕하기도 했다.
서석구 변호사는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주도한 세력은 민주노총”이라며 촛불집회 배후에 색깔론을 제기했다. 탄핵소추와 무관한 촛불집회의 성격을 따지다 소추위원단의 항의를 받았다. 주장의 근거라고 제시한 것이 ‘가짜뉴스’인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논증 능력이 떨어지는 변호인들을 썼으니 헌재에서 8대 0으로 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들이 차분한 논증보다는 버티기와 시간 끌기로 일관한 것도 헌재에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줬을 것이다.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퇴거 후 서울 강남구 사저에 도착해 지지자 등과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언어가 설득력을 발휘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흑백논리의 언어, 편파적인 언어는 사려 깊은 청자를 돌아서게 만든다. 김 변호사 등의 과격 발언은 오히려 ‘독’이 됐을지도 모른다. 가령 기각이나 각하 의견을 가진 재판관이 한두 명쯤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변호인들은 계속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한다. 기각 의견을 냈다가는 그들에게 동조해 그런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래서 인용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런 심리 변화가 가능했다는 말이다.
박영수 특검이 사는 아파트 앞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시위를 벌이거나 군복에 가스총을 차고 태극기 집회에 나온 ‘애국 시민들’의 경우도 그렇다. 세월호 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종북’이라며 폭력을 쓰는 그런 치졸한 행동에 공감할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헌재 결정에 이런 요인들도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박근혜의 시대가 끝났다. 그가 내놓은 숱한 비논리적 언어, 주술 호응이 안 맞는 문장 가운데 하나를 교훈 차원에서 다시 소개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그 어떤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2015년 5월 12일 국무회의).”
우리는 유창하지는 못할망정 조리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 생각이 정리된 사람을 다음 대통령으로 요구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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