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5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략유 비축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연일 치솟는 기름값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취해진 지시였다.
그럴만도 한 것이 미국의 휘발유 평균가는 갤런(3.8ℓ)당 3달러를 넘어섰다. 작년 말에 비해 37%나 오른 것이다. 한국의 절반 값도 안되지만 평소 싼 휘발유를 물처럼 써왔던 미국인들의 민심을 흉흉케 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주유소 휘발유 값의 고공행진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현재 미국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휘발유값 잡기에 쏠려 있다. 문제는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속시원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가장 쉽고 간단한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휘발유 절약을 독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이런 목소리는 미미할 뿐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 미국인들에게 운전을 줄이라고 권하는 것이 적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런 분위기 속에 며칠전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진정한 에너지 절약가로 소개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전략유 비축 제도도 지미 카터 대통령 때 창설된 것이었다. 그는 에너지 문제에 관한 한 선견지명을 지닌 인물이었다. 1977년 4월 저녁 카터는 ‘유쾌하지 않은 대화’에 전국민을 끌어 모았다.
그는 ″에너지 문제는 이 시대에 미국이 직면할 가장 큰 도전″이라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재생 에너지 연구를 지원했고 백악관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했다. 스웨터를 즐겨 입고 난방을 20도로 낮추었다. 재임 동안 석유 수입이 줄었고 대체 연료 개발은 늘었다.
그러나 카터의 예언적 경고는 종종 비웃음 거리가 되었다. 81년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태양 전지판은 철거됐다. 석유는 공급과잉이 돼 86년 배럴당 가격이 1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2000년 대선 당시 부시 후보는 석유사업가 출신답게 문제는 ‘소비과다’가 아니라 ‘생산과소’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앨 고어 후보가 태양열전지 자동차 등에 대한 광범위한 면세를 제안하자 딕 체니는 ‘멍청한’ 생각이라고 혹평했다.
체니는 ″당신 집 안의 모든 전등을 켜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고 공언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시장의 법칙’만이 중요했다. 그러나 유가가 급등하자 말투가 달라졌다. 부시 대통령은 에너지 절약과 카풀, 불필요한 여행의 제한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카터가 경고한지 거의 30년 만의 일이다.
지난 73년과 79년의 1·2차 오일쇼크에 이어 새로운 석유파동이 우려되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는 배럴당 75달러를 돌파했고 한국 수입 원유의 대종인 두바이유도 68달러를 넘었다. 1차 오일쇼크 당시 유가는 배럴당 2달러 대에서 10달러 대로 5배나 폭등했다. 2차 쇼크 때는 13달러 대에서 42달러 대로 치솟았다. 현재의 유가는 실질유가로 따질 때 아직은 당시보다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계는 그 어느때 보다 치열한 에너지 쟁탈과 각축의 무대가 되고 있다. 한정된 에너지 자원 확보의 필요성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강대국들의 에너지 확보 경쟁과 자원민족주의라는 2가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근래 부시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각각 아프리카를 순방한 것은 중동 의존도를 벗어나기 위한 자원확보 외교의 전형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도 석유가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중동 지역을 영향력 아래 두고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자국내 석유 매장량이 적은 미국은 전쟁을 불사했다.
남미에서는 자원 국유화 바람이 거세다. 반미를 기치로 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외국 회사의 약탈은 끝났다″면서 가스와 천연가스에 대한 국유화를 선언했다. 민영화되었던 에너지 산업이 자원착취만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볼리비아와 이에 앞선 베네수엘라의 국유화 선언은 70년대 중동을 휩쓴 자원국유화를 연상시킨다. 러시아도 올 초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유럽에 대해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등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의 유가가 제3의 오일쇼크로 이어질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에너지를 찾고 지키기 위한 각국의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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