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있는 여자’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오나.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가 쓴 소설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1951)’은 이런 여자 2명의 이야기다.
마약 중독에 창녀의 과거가 있는 흑인 여성 낸시는 미국 남부 가정의 유모가 된다. 그를 고용한 백인 여성 템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역시 과거 창녀로서 겪었던 끔찍한 환영을 못 벗어나고 있다. 어느 날 낸시는 템플의 갓난아기 딸을 질식사시키는 범죄를 저질러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 살인은 템플이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일종의 대속(代贖)적 행위였다. 그러나 헛된 짓이었다. 과거를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포크너는 이 작품에서 명언을 남긴다. “과거는 죽지 않는다. 실은 아직 지나간 것도 아니다.(The past is never dead. In fact, it’s not even past.)” 이 말은 2008년 미국 대선 때 흑인 후보로 나선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이 인종문제를 제기하면서 인용해 더욱 유명해졌다.
지난 20일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2학년 학생들의 ‘기억교실’ 이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유가족들이 학생들의 물건이 담긴 상자를 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포커스뉴스 |
나쁜 기억은 잊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느냐다. 이 소설이 보여주듯 개인의 삶에서도 나쁜 과거를 잊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사회·정치적 의미가 큰 비극적 사건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다 잊어버리자”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그런 성격의 사회적·역사적 사건으로 세월호 참사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꼽고 싶다. 세월호 참사의 수습과정은 발생부터 지금까지 ‘기억하자’는 쪽과 ‘잊어버리자’는 쪽 사이의 싸움이었다. 어느 정도 예견된 바다. 발생 초기 어느 대학 교수인가가 이런 취지의 말을 하지 않았나. “교통사고 하나 난 것 가지고 웬 난리냐.”
이 참사가 과연 규모가 큰 교통사고였을 뿐이고 학생들은 그저 ‘재수’가 없는 인생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다가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죽음 뒤에는 거대한 사회적 부조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따라서 그 죽음은 명백히 사회적 죽음이다. 우리의 양심과 이성은 말하고 있다. “잊어버리면 안된다”고.
지난달 20일 안산 단원고의 ‘기억교실’이 교정을 떠나 안산교육청으로 옮겨졌다. 참사 발생 858일째 되는 날이었다.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10개 교실과 1개 교무실을 그동안 보존해왔지만 교실 부족으로 더 이상 존치가 어려워 옮겼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으며 두 가지가 눈에 밟혔다. 하나는 ‘기억교실’이란 이름이다. 유가족들과 시민사회가 참사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며 얼마나 안간힘을 써왔던가. 다른 하나는 이런 안간힘에 걸맞게 이 사회가 참사의 진실을 밝혀내고 있는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참으로 궁색하다. 진상규명에 지극히 부정적인 정부는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기간이 6월말로 끝났다고 주장하며 예산배정을 거부했다. 당연하게도 지난 2일 열린 세월호 3차 청문회에 참사와 관련된 전·현직 정부 관료들은 한 명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김복동(왼쪽) 할머니와 시민들이 지난 31일 ‘화해치유재단 위안부 피해자 현금지급 방침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0억엔을 받고 끝내는 것은 정부가 할머니들을 팔아넘기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적힌 손팻말이 눈길을 끈다. ©포커스뉴스 |
물론 역사적으로 불행한 사건이라고 해도 절치부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훌훌 털어버리는 게 미덕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엔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바로 피맺힌 한을 푸는 과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90)가 얼마 전 이걸 다시 분명히 얘기했다. “100억 원을 줘도 받을 수 없어요. 아베(일본 총리)가 나서서 법적으로 사죄하고 배상을 하도록 해 할머니들 명예를 회복시켜줘야지.” 김 할머니는 한·일 양국 정부의 12·28 합의로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이 일본 쪽이 출연한 10억 엔을 할머니들에게 나눠주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이렇게 잘라 말했다. 신산의 세월을 살아온 구순 할머니지만 명예 회복의 요건이 무엇인지 똑똑하게 인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위안부 얘기를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다만 한·일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일관계도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언죽번죽 할 수 있는 것은 위안부 문제를 관념 속에서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의 경우는 비극적 가족사가 트라우마로 작용해 최소한의 공감능력마저 앗아가 버린 게 아닐까. 그는 ‘과거는 죽지 않는다’는 진리를 모르는 것 같다.
세월호든 일본군 위안부든 그들은 줄기차게 ‘잊어버리자’고 한다. 아픈 기억 자꾸 들추어내서 좋을 게 뭐냐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아픈 사회적 기억을 잊는 방법은 외면이 아니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과거에 대한 성찰을 회피하는 이 땅의 권력이나,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미화와 정당화에 여념 없는 일본의 극우들이나 서로 잘 통하는 부류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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