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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 산책길이 불편해진다

산책은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나는 혼자 걷는 이 땅의 남자들을 변호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철학자 칸트는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팔십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 매일 오후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산책에 나서 이웃들이 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단조로운 삶이었지만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을 종합한 웅대한 사유의 비판철학을 완성할 수 있었던 데는 산책이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가령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는 저 유명한 언명도 사색적 산책길에서 얻어진 게 아닐까.

 

©픽사베이

칸트 같은 위대한 철학자만이 아니라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산책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기분을 전환한다. 매일 산책하는 것은 신문사에 다닐 때나, 퇴직 3년째를 맞은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비나 눈이 와도 웬만하면 걷는다.

 

한데 언제부턴지 나의 일상적 산책에 약간의 차질이 생겼다. 맞은편에서 오는 여자들의 동선에서 나를 경계하고 피해가려는 듯한 태도를 의식하게 된 것이다. 특히 밤길을 걷는 젊은 여자들이 그랬다.

문제는 예전엔 그런 느낌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 사이 더 늙기는 했지만 내 외모가 과거보다 험상궂어진 건 아닐 텐데 어째서일까. 이 칼럼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가 이것이다. 물론 지레 짐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내가 과민한 건가? 그렇다고 불러 세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20대인 딸에게 물어보았다. 자기도 그렇고 친구들도 밤길을 갈 때는 예전보다 조심스러워진 것 같다고 했다.

원인은 두 말할 것 없이 최근 빈발한 여성 대상 묻지마 범죄, 여성혐오 범죄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5월 17일 서울 강남역 부근 화장실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인사건이다. 정신병력이 있는 30대 범인은 화장실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리다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무참히 살해했다. 그리고는 “여성들이 날 무시해서”라고 진술했다.

그 뒤 서울 수락산과 경기도 사패산에서 각각 60대와 50대 여성이 살해돼 안전한 것으로 믿어졌던 등산길마저 공포스러워졌다.

 

‘여자라서 죽였나요? 남자라면 살았겠죠.’ 강남역 사건 당시 현장에 붙은 이 추모 문구는 이 사건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심리적 충격은 집단적 피해의식이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성격이다.

따라서 필자가 산책길에서 받은 느낌은 반드시 과민한 탓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성 대상 범죄로 흉흉해진 세상사의 여파가 평범한 사람의 사색적 산책길에까지 미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슬럿워크 시위에서 여성들이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텔레그래프 홈페이지 캡쳐

최근 일본의 여성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가 쓴 책 ‘갈 곳이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 속 ‘시공간이 분리된 남자와 여자’란 제목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기본적으로 여성과 아이를 위한 공간인 주택지에서 중년남성은 홀로 편하게 머물 수 없다. 저술과 연구에 종사하는 필자의 지인 중에는 비교적 집에 있는 시간이 많고 복장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남성이 많지만, 동네를 돌아다닐 때마다 수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토로한다. 공원에 엄마와 아이가 모여 있으면 가급적 떨어져 앉는다….”

책은 도시에 사는 남녀의 공간이 사실상 분리돼, 특히 지역사회에서 남성 소외가 일어나는 모습을 잘 포착했다.

 

이것은 일본 사회의 얘기지만 나는 이 내용을 여성 대상 범죄가 빈발하는 한국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가 갈수록 남자들이 칸트처럼 천천히 산책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때 그렇다.

오늘의 불편한 진실은 한국사회가 어슬렁거리는 남성은 수상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지는 곳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잠재적 범죄자라고 할 때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으니, ‘슬럿워크’, 이른바 ‘잡년행진’이다. 여성들이 야한 옷차림으로 행진하는 이 행사의 취지는 노출 의상이 남성을 자극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남성 중심의 편견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기분은 개운치 않다.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그렇다. 노출이 많은 여성에게 남성의 눈길이 가는 건 자연의 섭리이지, 잠재적 성범죄자이거나 치한이라서가 아니다.

 

나의 산책이 불편해진 것이나 슬럿워크가 발생한 경위에는 모두 인과응보적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고자 한다.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의 성적 불평등 구조의 결과인데, 이를 제도화한 책임은 결국 남성이 져야 한다는 이치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전문가들은 성적 불평등 구조는 깨기 어렵고, 여혐범죄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불편한 산책을 해야 하는 건가. 그나마 우리는 극렬 테러는 없는 사회 아닌가라고 안도하며?[논객닷컴=김철웅]

2016.07.07 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