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도 틀렸고 저쪽도 틀렸다’는 양비론(兩非論)은 기자들에게 친숙한 존재다. 논설위원을 오래 지낸 필자도 사설이나 칼럼을 쓰며 양비론의 유혹을 느낀 적이 많았다. 가령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서 누가 옳은지 판단이 쉽지 않을 때, 제일 편한 논리가 양비론이다. 양쪽을 준엄하게 꾸짖는 거다. 그래놓고는 양쪽에게 ‘시급하게 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식으로 끝낸다. 그러면 객관적 입장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비론만 펴면 만사가 다 오케이인가. 아니다. 사안에 따라 어떤 주의·주장의 시비를 집요하게 따지고 고민해야 할 때도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4일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패널들 질문에 “야권 연대는 없다”고 대답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
새누리당 돕는 야권연대 거부··· 국민의당에 호의적인 보수언론이 증거
양비론 얘기를 꺼낸 것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가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거부하는 논리에 깔려 있는 게 바로 양비론이다. 그는 새누리당의 ‘확장’을 막겠다고 공언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정권교체를 다짐한다. 이게 새누리당 비판이라면 ‘새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은 더불어민주당 비판에 방점이 찍혀있다. 결론은 거대 양당이 독점하고 있는 기성 정치체제로는 희망이 없다는 것, 따라서 이들을 견제할 제3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견 나무랄 데 없는 논리다. 그러나 이 양비론은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다.
첫째, 현실과 논리 사이의 큰 간격이다. 국민의당이 새정치를 표방하고 있지만 나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도무지 새정치와 거리가 먼 인사들로 가득하다. 성경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거니와, 이런 낡은 사람들을 가지고 새정치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둘째, 야권연대를 거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을 돕는 이적행위로 판명날 것이다. 국민의당은 더민주와 자당의 지지층에 차이가 있으므로 야권연대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국민의당 지지층 상당수는 ‘2번이 싫어서 1번을 찍는’ 유권자이므로 국민의당이 선전해야 새누리당 표를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다. 이건 야권연대 거부를 정당화하기 위한 궤변일 뿐이다. 가령 안 대표가 출마하는 노원 병 여론조사 결과 야권연대가 될 경우 더민주 지지층이 대부분 안 후보쪽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연대 거부가 이적행위임을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다. 새누리당은 물론 보수 언론들이 한결같이 국민의당에 호의적이란 사실이다. 이들은 야권이 분열을 유지하는 것, 즉 안 대표가 끝까지 ‘양비론의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 대승의 길임을 잘 알고 있다.
“거대 양당 정치는 희망이 없다”고 주장하는 국민의당은 정치판을 뒤집을 수 있을까? ©포커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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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감각 잃은 탓··· 새누리 장기집권 체제로 소탐대실 가능성 커
안 대표 본인은 이런 양비론의 문제점을 인식할까. 글쎄다. 그는 2월 손학규 더민주 전 상임고문을 만나 이런 말을 했다. “제3당을 한다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양당을 비판하면 양비론이라 하고, 여당을 공격하면 왜 더민주에서 나왔느냐 하고, 야당을 공격하면 새누리당 2중대라고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국민의당에 야권연대·단일화를 요구해도 워낙 완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절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나는 그것이 독선과 아집의 소산이라고 본다. 집권자를 비롯해 정치지도자들이 독선과 아집에 곧잘 빠지는 것은 장삼이사들과 마찬가지다. 지도자의 독선이 다른 건 그 후과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다. 때로 이들은 독선을 신념으로 착각한다. 독선인지 신념인지는 균형감각 여하로 판단할 수 있다. 균형감각을 잃은 신념에 매몰되면 독선이 된다. 그는 지금 양당체제 타파란 신념과 양비론에 앞이 가려져 다른 중대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총선 결과 새누리당의 독주체제가 굳어지면 새정치도 정권교체의 가망도 더욱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것이다.
안철수 양비론은 연원이 깊다. 지난 대선 때부터 그는 정치혐오를 부추기며 새로운 정치를 내세웠다. 2월 필리버스터 때도 여당의 테러방지법 밀어붙이기와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싸잡아 비난했다. 현실정치는 최선보다는 차선을 선택하는, 심지어는 차악 선택의 기술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건 더민주의 ‘패권주의’ 타파 같은 한가한 게 아니다. 새누리의 장기집권을 막는 것이다. 안 대표는 소탐대실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 [논객닷컴=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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