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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 테러방지법, 왜 불요불급한 법인가

 

 

 

 

 

 

 

테러방지법, 왜 불요불급한 법인가 [김철웅의 촌철살인]

2016.03.07 11:37

 

 

테러방지법안이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새로 나온 게 아니다.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1월 국가정보원 주도로 법안이 최초 제출되었고,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부결된 전력이 있다. 국정원으로서는 15년 숙원사업이 이번에 성취된 셈이다.

 

 

테러방지법의 본질은 ⓵법을 만들면 테러방지가 되느냐 ⓶국정원을 믿을 수 있느냐로 요약된다. 많은 국민들은 국정원이 사생활을 들여다볼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픽사베이

 

미국은 9·11 테러 후 만든 패트리엇법 폐기··· 더 안전해지지도 않아

 

이 법이 재논의된 계기는 지난해 11월 13일 발생한 파리 테러였다. 12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런 기본적인 법체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전 세계가 안다. IS(이슬람국가)도 알아버렸다”며 “이런 데도 천하태평으로 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을 수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주도 아래 여권은 일사불란하게 입법에 착수했다. 전 세계적으로 테러가 빈발하고 있고, 우리로서도 북한이란 호전적 집단의 상시적 위협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테러를 막는다는 취지의 테러방지법에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는 일견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여당의 단독 처리 시도는 야3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과 이에 대한 여론의 호응 등 ‘필리버스터 현상’까지 낳았으나 더민주당의 석연치 않은 중단으로 법안은 가결되고 말았다. 그새 테러방지법을 놓고 수많은 담론이 생산됐지만 그 본질은 큰 질문 두개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법을 만들면 테러방지가 되느냐(또는 법이 없어 테러를 못 막느냐)고, 다른 질문은 국정원을 믿을 수 있느냐다.

 

첫째 질문에 대해서는 ‘모든 불법을 법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일반론으로 답할 수 있다. 이번 논란 와중에 외국 사례로 관심을 끈 것이 미국의 ‘패트리엇법(USA Patriot Act)’이다. 9·11 테러가 나고 6주만에 제정된 이 법은 수사당국에 e메일과 의료·도서관 기록 검열, 전화 도·감청 등 거의 무제한적인 개인정보 접근과 비밀영장·체포를 허용했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 위협이란 비판과 격렬한 인권침해 논란 속에 14년이나 유지되다가 지난해 6월에야 폐기됐다. 패트리엇법은 테러와의 전쟁 수행을 위한 중요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엄청난 대가를 치른 대테러전 및 패트리엇법 시행의 결과 미국이 더 안전해졌느냐는 질문엔 그렇지 않다거나, 더 위험해졌다는 인식이 많다.

 

 

©테러방지법 제정반대 온라인 서명운동 홈페이지 캡처

한국은 국가테러대책회의도 활용 안 해, 국정원의 사찰 권한 확대도 걱정

 

게다가 우리나라에 테러 관련 법률이 없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통합방위법을 비롯한 다양한 법률과 경찰 등의 대테러특공대 등 테러 대응 태세를 갖추기 위한 각종 법령과 기구가 마련돼 있다. 범정부 차원의 기구로 1982년 제정된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에 따른 국가테러대책회의도 있다. 국무총리·외교부장관·국방부장관·국정원장·국가안보실장 등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최고 수뇌들이 모이도록 돼있다. 웃지 못할 일은 2월 1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광진 더민주당 의원이 황교안 총리에게 ‘국가테러대책회의의 의장이 누구냐’고 묻자 황 총리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확인해 보겠다”고 답한 대목이다. 의장이 총리 자신임에도 그 사실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러니 “있는 테러대책회의도 잘 모르면서 비상사태 운운하며 새 법만 만들면 만사 오케이인가”란 비아냥을 들을 만하다.

 

두 번째 질문은 국정원의 전비(前非)와 관련한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은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따로 차려놓고 댓글을 달며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조직이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정보수집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범정부 차원의 테러 대응기구를 설치한다는 것이 골자다. 상식적으로 과거에 이런 위법을 저지른 정보기관이라면 철저한 인적 제도적 개혁을 마친 연후에 새로운 권한을 주는 게 순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 요구가 뜨겁던 2013년 “국정원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주기 바란다”며 국정원에 자체 개혁을 하라는 전권을 주었다. 세상 어떤 조직도 그런 개혁을 하라면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야당과 시민사회는 테러방지법이 테러방지를 빙자한 공안·사찰 정치 강화, 나아가 정권연장이란 복선을 깔고 있지 않느냐는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