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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신정국가의 총리라면 모를까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과거 ‘친일, 반민족적’ 문제 발언들이 공개된 뒤 비판여론이 비등하고 있지만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옹호론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그 발언들을 맥락적으로 이해하면 큰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장로로서 교회란 특별한 공간에서 한 발언임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KBS가 자극적으로 딱 특정 부분만 편집해서 보여줬으니까 그렇지, 뭐 그리 흥분할 일도 아닌 건가.


 맥락적 이해란 말이나 문장은 어느 부분만 잘라내지 말고 전후 문맥을 살펴야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그를 두둔한다며 이런 말을 했다. “정치인이 마음껏 말하듯 언론인들도 자유롭게 말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예전에 한 글과 말 몇 마디를 갖고 그의 삶과 생각을 규정하려 한다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말은 잘 했다. 정치판에서 상대 발언의 전후 문맥은 거두절미한 채 특정 부분만 부각시켜 공세를 펴는 일이 얼마나 많나. 그렇게 말꼬리 잡기를 함으로써 본래 취지는 왜곡된다. 이 수법은 소모적 진흙탕 싸움을 도발하는데 그만이다. 앞뒤 맥락을 외면한 채 ‘고무 찬양’ 혐의 따위를 뒤집어씌우는 종북몰이가 대표적 사례다. 지금도 정부 반대를 종북, 빨갱이로 모는 일이 툭하면 벌어지고 있다.


 문 후보자의 경우 맥락적 이해를 하자는 말은 그의 강연을 포함해 평소 생각을 차분하게 이성·논리적으로 살펴보자는 뜻일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새누리당은 지난 13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일본 식민 지배는 하나님 뜻”이라는 등 문 후보자 발언이 담긴 1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시청했다. 그 후 상당수 당직자들이 긍정적인 태도로 돌아섰다고 한다. 한 의원은 “문 후보자는 나라를 사랑하는 분”이라고, 다른 의원은 “강의내용이 본받을 만하다”라고까지 했다. 그들의 변화는 맥락적 이해를 한 결과일까.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가 13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면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 지명자는 여당 초선의원들의 사퇴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자 “앞으로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음에 말씀 드리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윤 사무총장은 “우리 민족이 게으르다는 것은 문 후보자 얘기가 아니라 윤치호 선생의 얘기”라며 “조선의 지식인들이 게으르다는 것이 왜곡돼서 편집됐다”고 주장했다. 이날 동영상 시청은 당 안팎에서 일고 있는 ‘문창극 자진사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기획된 것인 만큼, 보도가 왜곡 짜깁기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며칠 전엔 총리실도 ‘보도가 악의적으로 왜곡됐다’면서 누리집에 3개 동영상 풀텍스트를 올렸다. 그러나 동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다수가 정반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도리어 문 후보자의 ‘친일·식민 사관’을 재확인했다며 “무엇을 왜곡 편집했다는 건가”라는 반응인 것이다.


 말이나 글에서 인용은 괜히 하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거나, 반대로 자기와 다른 생각을 비판하려 할 때 한다. 문 후보자의 경우 윤치호의 일기 내용이 평소 자기 생각과 잘 맞기 때문에 인용한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의 다른 강연 동영상에는 윤치호가 “비록 1938년 이후에 몇 년간 친일을 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기독교를 끝까지 가지고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그가 윤치호나 이승만을 ‘믿음의 선조’라고 부르며 뼛속 깊이 존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문 후보자가 장로로서 교회란 특수 공간에서 한 발언이란 사실도 면책 근거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이 동영상이 옳은 그르든 자기 나름으로는 진실된 신앙에 기초한 생각들을 그대로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 뜨거운 신앙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강연에서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일제 식민지도, 분단도 그렇다고 한다. “(하나님이) 6·25까지 만들어 주셨어요”라고 말한다. 입만 열면 “하나님의 뜻”이다. 동영상과는 별도로 그는 한 기독교 선교방송에선 “때가 되면 하나님의 섭리로 북한이 무너지리라고 확실히 믿는다”며 북한과 협상이나 대화는 필요없다는 소신도 밝힌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것을 단순히 교회 내부용 발언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아주 순진한 생각이다. 신앙은 철학을 뛰어넘는 고귀한 무엇이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점에서 그의 발언은 진심을 담은 전인격적 행위였다.


 나는 2010년 8월 ‘신앙과 독선 사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거기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 대해 “그의 통치행위와 정책에서 드러나는 독선적 모습이 신앙과 어떤 관계가 있지 않나. 혹시 신앙이 독선을 부추기지 않았을까”란 질문을 했다.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특히 4대강 사업에서 매우 독선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칼럼에서 9·11 테러 후 세계를 선과 악, 동지와 적으로 나눈 부시 미국 대통령의 극단적 이분법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그의 단순 사고구조에도 근본주의적 기독교관이 깔려 있었다. 증거도 없이 이라크를 침략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데도 필시 이 기독교 근본주의적 선악관이 작동했다.


 나는 문 후보자에게 그토록 확고한 신앙을 내려놓으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러라고 한들 그가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확신이든 광신이든 민주국가에서 신앙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이 말만은 분명하게 해야 겠다. 신정국가라면 모를까 세속국가 대한민국의 총리로는 절대 결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