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철웅 칼럼

연결된 세상사

살다보면 세상사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사회를 생물유기체에 비유해 설명한 사회유기체설도 이런 인식의 소산일 거다. 아무튼 인간이든 자연이든 사건이든 유기적으로, 또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고 보면 많은 현상들이 그럴 듯해 보인다.
그래서 영국 소설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는 대표작 「하워즈 엔드」에 ‘오직 연결하라(Only connect)’란 독특한 제사(題辭)를 붙인 게 아닌가 한다. 소설은 성격과 출신, 가치관이 판이하게 다른 두 집안 남녀의 대립과 ‘연결’을 정교한 필치로 그려냈다.

며칠 전 대학생 최태섭씨가 경향신문에 쓴 ‘2010년 3월, 넘치는 사건사고’란 칼럼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필자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글을 쓰는 사람에겐 지치지 않고 풍부한 소재를 제공해주는 좋은 사회다. 그가 3월 한 달 동안 벌어진 큰 사건들을 꼽아보니 숨이 찰 정도였다.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서 농지와 멀쩡한 강들이 파헤쳐지고, …부산 여중생 납치사건 용의자가 검거되었다.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이 들려왔다. …검거된 납치사건 용의자 기사가 언론을 뒤덮었고, ‘좌파교육이 성범죄자를 양산했다’는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3월의) 마지막 열흘은 더더욱 다이내믹하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을 ‘좌파’라며 직영사찰 전환을 종용했다는 폭로가 나왔고 …해군 천안함이 서해 바다에서 침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경화 흐름의 중심인물 안상수

최씨는 “이 모든 것이 만우절을 위해 꾸며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썼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현실은 도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응시하는 게 낫다. 나는 이 많은 사건들을 연결해 주는 사회적 흐름으로 우경화를 꼽고 싶다. 우경화란 코드가 이 사건들을 알게 모르게 연결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그 중심 인물은 단연 안상수씨다. 나는 그가 “국무부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폭로’한 매카시 못지않은 반 좌파 신념가라고 본다. 좌파성향 판사와 좌파 정권이 박은 대못, 좌파 이념교육에 대한 그의 척결의지는 대단했다. 다만 매카시의 환생처럼 여겨지던 그의 거침없는 행태는 ‘좌파 주지’ 파문 앞에서 일단 제동이 걸렸다. 지금 그는 근신하면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는 듯하다. 국회에선 “우리 사회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며 상대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을 언급한다. 속마음은 지금도 좌파척결을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안상수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좌파’ 공격에 그토록 집요했던 만큼 혹여 그가 어떤 종류의 ‘언어폭력’을 당한다면 당연히 치러야 할 업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침묵과 가식을 집요하게 추궁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언필칭 정치지도자란 그의 언행이 강한 전염력으로 색깔론 중독자들을 양산한다는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달 말 보수신문들에 실린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기가 무섭습니다’란 광고다. ‘뜻있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으로 낸 이 광고는 천주교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 반대를 천명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본심은 뒷부분에 담겨 있다. “환경주의와 평화주의가 좌익들이 즐겨 사용해 온 위장 이데올로기로, 이 이데올로기가 교회에 파고들어 일부 성직자들을 좌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치를 따지는 듯하더니 대뜸 색깔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 며칠 후 나온 ‘명진 스님 그만 하십시오. 이러다가 불교 다 죽습니다’란 광고도 대동소이하다.

그의 언행이 색깔론 중독자 양산

명진 스님에게 정정당당하게 환속해 정치에 입문하라”고 권한 이 광고를 주도한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은 반미친북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수호를 목표로 한다는 단체다. 그러면 보수 신문들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새기라고 다그친다. 색깔론엔 논리나 지적 수준도 필요 없다. 다만 상대방을 좌파,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확신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색깔론이 성장할 토양과 자양분은 넉넉하다.
천안함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과 안상수 같은 정치인, 오늘도 냉전 논리를 팔아먹는 데 골몰한 보수 언론들은 반성보다는 좌파정권 10년이 국가안보를 무너뜨렸다는 생각을 거두지 않을 것 같다. 색깔론과 극단적 우파의 발호는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