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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데스크 칼럼] 침묵의 힘

“정치범 수용소” “못해먹겠다”로 압축될 수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잇단 돌출발언과 이에 대한 충격의 반응 속에서 1987년 거제도 옥포 대우조선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노사분규 중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석규씨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는 시민·재야단체들의 대책회의에서 한 달변가를 발견했다. 나의 기억으로 그는 사태를 유리한 국면으로 몰아가기 위한 전략과 전술에 대해 설파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저 말 잘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수군거렸고 그가 인권변호사 노무현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그는 3자개입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그 15년 후 대통령이 된 그가 ‘말’ 때문에 자주 구설에 오르고 그 결과 적지 않은 사람들을 지지 철회의 충동에 빠뜨리는 것을 보면서, 강한 첫인상을 준 그의 말솜씨와 오늘날 그가 말과 관련해 생산하고 있는 잡음들의 인과관계가 자연히 궁금해지는 것이다.

-새만금 묵언순례 메시지 강렬-

며칠전 종교인들의 새만금 살리기 3보1배 수행행렬이 서울에 도착했다. 생명존중과 자연보존을 염원하는 이 행렬의 의미를 가장 감동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바로 스님과 신부님의 묵언(默言)수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침묵이 어떤 논리와 절규보다도 강하고 정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건전한 상식으로는 갯벌을 보존해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보존론이 절대적 당위로 여겨지지만 새만금사업을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개발론자들의 논리도 만만치 않다. 지난주 3보1배 행렬의 바로 옆에서는 ‘전라북도 주민, 새만금추진협의회’가 “새만금 방조제 중단이 웬말이냐”라고 항의시위를 벌이는 광경이 연출됐다.

농업기반공사의 자료는 식량안보라는 측면에서 간척사업은 반드시 추진되어야 할 뿐 아니라 환경친화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환경론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농지가 갯벌보다 경제적 가치가 높으며, 방조제 앞에 새로운 갯벌이 형성될 것이고, 간척사업을 하면 되레 철새가 더 많이 날아올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덧붙여 사업 중단은 지역주민의 반발을 심화시키고 정치·사회적 불안을 초래할 것이란 경고도 하고 있다.이렇게 완전히 상반된 논리들이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기적의 순례를 감행한 종교인들이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참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말하지 않음, 즉 묵언의 수행이었을 것이다.

갯벌 개발론은 현실론이며 이른바 실용주의의 한 모습이다. 상황에 따라서 그것은 힘센 미국의 환심을 사야 한다는 친미론도 되며, 과거의 숙명적 친일론과도 통한다. 필요하다면 인간가치를 허물어버리면서까지 현란한 주장을 펼치는 이 현실론 앞에서 우리가 할 말을 잃게 될 때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침묵이다.

미국의 권력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 촘스키는 프랑스 언론인들과의 대담에서 “심지어 중앙정보국(CIA)도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정보기관의 자료를 읽어보면 그들의 접근방식과 분석법이 그들을 비판하는 좌익계 인사들의 것과 무척 흡사하다는 것이다.

다만 동일한 현상에서 끌어내는 결론이 서로 다를 뿐이다. 촘스키는 그 결론들의 차이는 결국 가치관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진단한다. 가령 새만금 논란의 경우에서도 개발론이 환경론과 보존론의 영역을 마구 넘나들면서까지 그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음을 볼 때, 촘스키의 통찰력은 돋보인다.

-이해대립땐 말보다 강한 웅변-

타계 1주기를 맞아 최근 출간된 유고집 ‘거짓말 참말 그리고 침묵’에서 언어철학자 이규호는 ‘침묵의 순간’이란 제목으로 책의 8장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삶의 절박한 순간에 ‘말을 잃었다’ 혹은 ‘할 말이 없다’는 상황에 부딪치는 경험을 한다. 말과 침묵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침묵은 어떤 때는 뛰어난 웅변이 될 수가 있다. 말이 없는 것이 가장 훌륭한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라는 글로 그는 미완성인 이 짧은 장을 멈추고 있다.

그는 또 ‘거짓말’의 장에서는 “말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거짓을 말하게 된다.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거짓이 함께 들어온다”고 썼다.
“이제 우리는 열둘까지 세고/모두 침묵을 지킨다/지구 위에서 한번만이라도/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파블로 네루다의 ‘Extravagaria’에서)
〈김철웅/문화부장〉입력 2003.05.2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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