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루또, 낫또, 스빠나...’ 볼트(수나사), 너트(암나사), 스패너(볼트·너트 등을 죄거나 푸는 공구)의 일본식 발음이다. 1990년대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기 전, 많은 독자가 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 영문판이 일본 특집을 냈다. 내가 읽은 기사는 ‘당시 특정 분야의 미국인들이 이런 일본식 영어를 익히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는 기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엉뚱한 말을 꺼낸 건 우선 이 땅의 친일파를 논하기 위해서다. 친일파는 뿌리가 깊다. 그럼에도 친일파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역사적 인물은 이완용(1858~1926)이다.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데 의외의 전력도 있다. “학부대신 이완용씨는 평일에 애국 애민 하는 마음만 가지고 나라를 아무쪼록 붙잡고 백성을 구완하며 나라 권리를 외국에 뺏기지 않도록 하려고 애를 쓰다가 미워하는 사람을 많이 장만하여…”. 독립신문 1897년 9월 4일자 보도다. 이완용은 독립협회 초대·2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친일 행각은 훨씬 전 시작됐다. 1905년 11월 학부대신 이완용은 고종을 협박해 을사늑약에 서명하게 했다. 그때 이완용이 했던 말이다. “국력이 약한 우리가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 진데 더 이상 감정이 충돌하기 전에 일본의 제의를 수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명전권대사로 대한제국에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나는 비로소 일당(이완용의 호)이 탁견과 용기를 갖춘 비범한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고 탄복했다. 이완용 사후 출간된 <일당기사(一堂紀事·1927)>에 담긴 내용이다.
책에는 이완용의 인생관·가치관을 보여주는 사례가 또 나온다. “갑오경장 후 을미년에는 아관파천 사건으로 노당(露黨·친러파)의 호칭을 얻었고, 그 후 러일전쟁이 끝날 때 전환하여 현재의 일파(日派·친일파) 칭호를 얻었다. 이는 때에 따라 적당함을 따르는 것일 뿐 다른 길이 없다. 무릇 천도(天道)에 춘하추동이 있으니 이를 변역(變易)이라 한다. 인사(人事)에 동서남북이 있으니 이것 역시 변역이라 한다. 천도, 인사가 때에 따라 변역하지 않으면 실리를 잃고 끝내 성취하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의 결정적 흠은 자기 철학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령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이완용은 개화파가 주장하는 것이 뭔지, 세계 정세나 시대적 당위성은 무엇인지 전혀 인식되어 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권을 빼앗긴 뒤 이완용은 고종에게 말한다. “시국에는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있사옵니다.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외교권을 일본에 맡긴 것뿐입니다. 나라의 힘을 키워 도로 되찾아오면 되는 것이옵니다.”(고종실록 1906. 12. 16)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들도 이완용의 어법과 묘하게 닮았다. 올해 3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정부는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했다. 그럴듯해 보이나 일제 전범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대신 우리 기업이 낸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며 ‘새로운 시대’를 강조했다. <통일뉴스>는 이에 대해 “‘미래지향’, ‘새 시대’라는 미사여구를 쓰지만 결론은 하나, 대일 굴욕이다. 이제 한국의 대일 굴욕시대가 합법적으로 열린 것”이라고 썼다.
이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은 일본 기업에 책임이 있다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뒤엎는 것이었다. 피해자가 도리어 돈을 모아서 피해배상을 하는 괴상한 일이 벌어졌는데 뉘라서 가만히 있을까. 이 매체는 ‘윤석열에 친일 디엔에이가 있는가’라는 말들이 떠돌겠는가고 했다.
하지만 점입가경,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은 한 술 더 뜬다. 이달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축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의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며 “아직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국민 동의 없는 일방적 한·일관계 개선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공산전체주의·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는 정부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방조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왔다. 오염수 방류 비판을 공산전체주의 세력의 반일 선동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일본이 할 말을 대통령이 대신 해준 셈인데 상황을 일본 입장에서 바라본다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고마워할까. 대통령은 이완용 같은 맹목적 친일파는 아닐지언정 사고 구조가 친일파를 매우 닮았다. 일본에 우선 순위에 둔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대주의와 친일, 그리고 친미를 관통해 흐르는 심리는 뭘까. 필시 착각의 결과인, 강자의 안온한 품에 안기겠다는 열망이라고 본다.
'김철웅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와 ‘또한’, 헷갈리나요? (1) | 2023.12.02 |
---|---|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I Am a Rock’과 유치환의 시 ‘바위’를 비교한다 (0) | 2023.11.12 |
비처럼 음악처럼-비와 노래Ⅱ (0) | 2023.07.30 |
잡초에 대한 덕담 한마디 (0) | 2023.06.30 |
민주주의에 대한 윤석열 후보의 편협한 인식 (1) | 2021.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