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민들레, 애기똥풀이 들어가고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어날 때다. 퇴직 후 하루 만보 걷기를 10년째 하고 있는 내가 요즘 즐겨 듣는 노래가 있는데, 나훈아가 부른 <잡초>다.
민들레 애기똥풀 개망초는 그나마 이름이라도 안다. 산책길에 보는 대부분의 들꽃들은 이름을 모른다. 노래 가사에도 ‘이름 모를 잡초야’라고 했듯.
2018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방영된 SBS드라마 ‘복수가 돌아왔다’에 나오는 고교 특별반 이름이 ‘들꽃반’이다. 각 반의 문제아들을 모아 만든 신설반이다. 생각하건데 차마 ‘잡초반’이라 부르기에 부담스러워 ‘들꽃반’을 쓴 거라고 지레 짐작해 본다. 하긴 1980년대 내가 서울시교위에 출입할 때 이미 고교엔 장미반 백합반 수선화반이란 이름이 있었다.
잡초라고 뭉뚱그려 불리는 식물들에도 사실 다들 이름이 있다.
향토색 짙은 민족문학을 추구한 작가 김정한 선생(1908~1996)은 생전에 우리말 구사에 대한 엄격한 신조로 유명했다. 한 번은 제자 최영철 시인을 이런 말로 꾸짖었다고 한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이 어디 있노. 시인이라면 낱낱이 찾아서 붙여줘야지.” 선생이 보기에 ‘이름 모를 새’나 심지어 ‘이름 없는 꽃’이라고 쓰는 것은 게으름 탓이었다. 다 자기 이름이 있건만 명색 문인이 꽃이름 풀이름도 잘 모르고 얼버무려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과꽃(1957, 어효선 작사·권길상 작곡)
시인·소설가의 게으름이 첫번째 이유라면 두번째로 지적할 건 언어의 추상화다. 물론 인간이 자연과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언어의 추상화 덕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의 추상성이 언어개념 자체의 혼란을 동반했다. 우리를 추상성의 미로 속에 가두는 것은 서로 확연히 다른 말을 하는 경우보다 ‘같은 언어로 다른 말하기’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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