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성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30)는 특이한 정치인이다. 20대이던 2018년 11월 중간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뉴욕주 제14선거구에서 당선돼 사상 최연소 하원의원이 됐다. 당내 경선에서 10선 관록의 조셉 크롤리를 꺾는 큰 이변을 낳더니 본선에서는 공화당 후보도 가볍게 물리쳤다.
푸에르토리코계 부모 밑에서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그는 보스턴대에서 국제관계와 경제학을 공부했다. 19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생활고를 겪으며 출마 전까지 바텐더·웨이트리스 생활을 했다. 선거전 메시지는 단순했다. “선거구 주민의 70%가 비(非)백인인데 왜 백인이 우리 지역을 대표하느냐. 내게 기회를 달라.” 그는 “노동계급의 고통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한 줌 부자들이 아닌 만인을 위한 미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은 ‘그린 뉴딜’에서다. 2019년 2월 그는 에드워드 마키 민주당 상원의원과 ‘그린 뉴딜을 실행하기 위한 연방 정부의 의무’를 규정하는 결의안을 상원에 제출했다. 향후 10년 내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0)’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연초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나선 첫 활동이었다. 그는 기후변화가 젊은 세대의 중요 관심사임을 알고 있었고, 그 자신 간절한 정책실현 의지가 있었다.
지난해 2월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이 의사당 앞에서 그린 뉴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 /위키피디아
결의안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1조 달러 이상 인프라 투자, 전기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 탈탄소화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 이를 위해 과감한 재정적자 정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그의 인식은 과격해 보일 정도다. 그는 기후변화를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이자 전세계 산업문명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제어하지 않고, 어떻게 그 비용을 지불할 것이냐가 당신의 가장 큰 현안이 아니라면 세계는 12년 내에 끝장날 것이다.”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린 뉴딜은 미국 대선에서도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주 민주당 후보 조셉 바이든 전 부통령은 ‘2400조원 그린 뉴딜’ 공약을 내놓았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4년간 2조 달러(약 2400조원)를 청정에너지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21조3400억 달러의 10분의 1을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겠다고도 했다.
유럽연합(EU)도 분주하다. EU집행위는 5월 27일 7500억유로(약 1020조원) 규모의 코로나19 대응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EU 출범 이래 최대 규모 예산이다. EU는 ‘유럽 그린딜’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 대응이란 이름이 붙어있지만, 이번 부양책도 초점은 녹색전환이다. 유럽 그린딜의 핵심도 2050년까지 유럽을 ‘탄소 순배출량 0’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탄소 저감 노력이 미진한 회원국에는 ‘탄소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목표 없는 그린 뉴딜로는 기후위기 대응할 수 없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기후위기비상행동
한국은 어떤가. 정부도 지난 14일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한가해 보이는 것은 어째서일까. 첫째는 단기 투자 계획을 내놓는데 그쳤다. 정부는 2025년까지 예산 73조4000억 원을 투입해 일자리 65만9000개를 창출하겠다고만 밝혔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은 두 번째 문제로 연결된다. 환경단체들은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반드시 목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는 ‘탄소중립을 지향한다’고만 돼 있다. 그린피스 관계자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목표 설정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넷제로는 미국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사기업조차 각각 2030, 2040년까지 하겠다고 선언했을 만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50년까지 넷제로를 실현하겠다는 나라는 70여개에 달한다.
목표가 희미하다 보니 에너지 전환 정책도 예전 수준을 맴돌았다. 시행 3년째인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2030년 재생에너지 비율 20% 달성 계획)’ 상의 2022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는 27.5GW였다. 이번 발표에서도 2022년 목표가 26.3GW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세계적 흐름과 비교할 때 목표치 설정 등 알맹이가 빠졌다. 또 당초 논의된 수준에서 상당히 후퇴했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국제사회로부터 ‘기후 악당’이나 기후위기 대응 후진국으로 취급받는데 그치지 않는다. EU가 추진중인 탄소 국경세가 조만간 도입되면 석유화학·철강·자동차 수출업체의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기후변화 대응은 선의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단호한 결의와 정교한 프로그램이 받쳐줘야 한다.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이런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목표 없는 그린 뉴딜로는 기후위기 대응할 수 없다.” 2020.07.2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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