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취향은 참으로 다양하다. 사람들의 애창곡을 보면 알 수 있다. 트로트 포크 발라드 록 댄스음악….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은 현재 83만9893곡인데 이중 절대다수가 대중음악이다. 하고많은 노래 가운데서 유독 그 노래를 고르는 이유는 뭘까. 중·노년층은 트로트, 젊은이들은 힙합이나 댄스음악, 이런 구분이 가능한가.
트로트 붐이 일고 있다. TV조선이 개최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이 14일 끝났는데 11회 결승(12일 방송분)은 시청률이 35.7%였다. 방송계 꿈의 시청률이라는 30% 벽을 넘어선 것이다. 붐을 넘어 열풍이라고 할 만하다. 이를 계기로 음악취향과 세대차가 궁금해졌다.
미국의 인지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 대니얼 레비틴은 음악 선호도가 10대에 결정된다고 말한다. “열네살 무렵 음악적 뇌의 배선이 어른 수준으로 완성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요컨대 어릴 때 들은 노래의 기억과 취향이 평생 간다는 말이다. 이를 잘 증명하는 것이 구세대의 트로트 취향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노년에 접어든 이들은 트로트 음악에 길든 반면 1970년대 이후 나온 포크 록 아이돌 음악에는 적응하기가 무척 어렵다.
역지사지하면 젊은세대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트로트 노래가 ‘구식이어서 재미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예외는 항상 있다.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는 어릴 적 트로트에 대해 거의 혐오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나는 송창식과 양희은을 좋아하면서도, TV에 나오는 남진과 나훈아의 노래에는 유치함과 천박함에 몸을 떨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평론가로서 오래 노력한 결과 트로트에 대해 감동하고 눈물흘릴 정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K팝시대에 ‘왜색’ 시비는 안맞아
사실 이런 취향변화를 겪은 사람이 적지 않다. 지루하고 따분하게만 들리던 트로트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가슴에 와닿는 것이다. 트로트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인지 모른다. 트로트는 1932년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일명 ‘황성 옛 터’)에서 시작해 고복수의 ‘타향’(1934),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에 이르러 장르가 확고하게 정착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 엔카(演歌)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서양음악 자체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이식된 것이다. 트로트의 단음계는 일본 요나누키 단음계와 같다. ‘요나누키(四七拔き)’는 일본어로 ‘4와 7이 빠진’이란 뜻이다. 라가 으뜸음인 단음계에서 4, 7음은 레와 솔이다. ‘라시도미파’, 우리 전통음악에는 이런 음계가 없다.
트로트 리듬은 ‘쿵짝 쿵짝’의 빠른 2박자가 기본이다. 여기서 비하적 어감의 명칭 ‘뽕짝’이 유래했다. 선율은 애상조가 특징이며 화성적으로도 주요 3화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사도 신파적이다. 신파극은 일제강점기에 유행한 연극이다. 등장인물들이 괴롭고 우울하고 습관적으로 울어댄다. 이런 왜색성 단순성 신파성은 트로트가 안고 있는 ‘내재적 한계’라 할 수 있다.
트로트 붐은 그런 점에서 숙제도 안겨줬다. 바로 세가지 한계를 극복하는 문제다. 1970년대에 한국에 온 일본 체육인들이 요정에서 흘러나오는 우리 가요를 듣고 “고도바다케 치가이마스네(가사만 다르군요)!”를 연발했다는 증언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케이팝의 위력을 실감하는 21세기 이 시절에 왜색가요의 폐해를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생각이다.
젊은세대도 부끄러워하지 않아
트로트 취향의 세대차도 극복되는 조짐이다. 트로트는 송가인 등 젊은 가수들이 유입되면서 아이돌 못지않게 인기를 누린다. 대형스타로 떠오른 송가인 팬덤의 주 연령대는 50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미스터 트롯’ 서울 콘서트 예매상황으로 미루어 젊은세대의 트로트 실수요가 늘었다고 공연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20대 비율이 43.3%나 됐는데 여기엔 부모 심부름으로 예매하는 사람과 실수요자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2007년 나온 영화 ‘복면달호’에서 주인공 달호는 트로트 가수가 된 처지가 부끄러워 가면을 썼다.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와 달리 트로트에 대한 열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 2020-03-17 12:30:2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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