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논객닷컴

[논객닷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성적표’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야당은 ‘조공 외교’ ‘외교 참사’라고 깎아내렸고, 정부·여당은 양국 정상이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안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런 폄훼나 평가와는 별도로 눈여겨볼 다른 ‘사건’이 있다.

 

문 대통령이 충칭(重慶)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를 방문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 대통령 여럿이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은 적이 있으나 충칭 청사 방문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방명록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정신입니다”라고 적었다. 독립유공자 후손과의 간담회에서도 “여기 와서 보니 가슴이 메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나라도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으로 남았다. ‘임시정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1921년 1월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신년축하식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이

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이 모양으로 광복군이 창설되었으니 인원도 많지 못하여 몇 달 동안을 유명무실하게 지내다가 문득 한 사건이 생겼으니 그것은 50여 명 청년이 가슴에 태극기를 붙이고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 정청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우리 대학생들이 학병으로 일본 군대에 편입되어 중국 전선에 출전하였다가 탈주하여 안휘성 부양(阜陽)의 광복군 제3지대를 찾아 온 것을 지대장 김학규가 임시정부로 보낸 것이었다.…”

 

이것은 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서 충칭 임시정부 시절을 회고한 부분이다. 이 사건은 중국인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중한문화협회 식당에서 환영회가 열렸는데 서양 여러 나라 통신기자들이며 대사관원들도 참석해 우리 학병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백범은 “어려서부터 일본의 교육을 받아 국어도 잘 모르는 그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려고 총살의 위협을 무릅쓰고 임시정부를 찾아왔다는 말에 우리 동포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목이 메었거니와 외국인들도 감격에 넘친 모양이었다”고 썼다.

 

알다시피 이 탈주병들 가운데 장준하와 김준엽이 포함돼 있었다. 둘은 각각 일제 말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장준하는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두 달간 6000리(2356㎞) 길을 걸었다고 한다. 우리 광복군은 미국 전략사무국(OSS)이 주관하는 특별훈련을 받고 지하공작원으로 국내에 진입하기 직전에 일본의 투항을 맞이했다.

 

백범은 이를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천신만고로 수 년 간 애를 써서 참전할 준비를 한 것이 다 허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특히 걱정한 것은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장래에 국제간에 발언권이 박약하리라”는 것이었다. 이 예감은 적중했다. 얼마 후 미국 측으로부터 “서울에는 미국 군정부가 있으니 임시정부로는 입국을 허락할 수 없은즉 개인의 자격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충칭 임시정부 시기의 백범 김구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문 대통령 방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에 수립된 임시정부는 1932년까지 그곳에 있다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항저우(杭州, 1932)·전장(鎭江, 1935)·창사(長沙, 1937)·광저우(廣州, 1938)·류저우(柳州, 1938)·치장(江, 1939)·충칭(重慶, 1940)으로 청사를 옮겼다. 충칭 시절은 상하이 때처럼 활발한 활동을 펼친 기간이다.

 

이처럼 중국 땅을 전전해야 했던 임시정부는 문 대통령의 말대로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법통이다.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긴박하게 펼쳐졌던 임정의 역사, 독립운동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다. 임정사 사료 발굴·보존도 미흡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10여 년 전부터는 건국이 1948년이라고 주장하는 뜬금없는 ‘건국절’ 논란이 지펴졌다.

 

장준하와는 달리 중국사를 연구하는 길을 걸었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1921~2011)은 1940년대 재 중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투쟁, 해방 전후의 사건들이 생생하게 서술된 ‘장정(長征)’이란 5권짜리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역대 정권에서 12차례나 총리 등 입각 권유를 받았으나 고사한 사실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신 내가 한 일은 1987년 헌법 개정 때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헌법 전문에 명시토록 하고, 1993년 민족정기 앙양을 위해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 봉환과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건의해 관철시키는 등 국가의 정신적 기틀을 바로잡은 일이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등록된 해외 독립사적지 1005곳 중 464곳이 중국에 집중돼 있다. ‘중국 속 임정과 광복군의 흔적을 찾아서’란 답사여행 상품이라도 나와야 할 판이다.

 

다시 세월이 흘러 우리 대통령이 충칭 임정 청사를 찾아 천명했다. 임시정부가 우리 대한민국의 법통이라고. 우리는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고 있다고.     2017.12.22 1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