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가보고 싶은 나라가 있었다. 히말라야의 산악국가 부탄이다. 남한 절반 정도 크기에, 인구 79만명이 사는 이곳이 호기심을 끌게 된 건 ‘가난하지만 국민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것이 계기다.
구체적으로 2010년 영국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 조사에서 국민 97%가 ‘행복하다’고 응답해 1위를 차지한 나라가 부탄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지난해 2804달러로 한국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국민총행복(GHN·Gross National Happiness)이라는 것이 경제력이나 경제성장과는 별개의 것이거나 심지어 무관하다는 증거인가. 부탄에서는 이 수치를 어떻게 산출하는가. 많은 것이 궁금하던 차에 엊그제 경향신문 창간 특집으로 부탄발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로 궁금증이 상당히 풀렸다. 필자의 고정관념·선입견이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하고 있는 것도 깨달았다.
부탄 국기 ©픽사베이 |
처음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행복정책을 관장하는 부탄 관료들이 ‘부탄 유토피아설’을 부인했다는 대목이다. 부탄 국민총행복위원회(GNHC) 평가조사팀장은 “지구상 어디에 유토피아가 있겠는가. 부탄 정부는 시민 개개인 행복의 총합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부탄이 가장 행복한 나라는 아닐지라도 시민 행복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나라라는 말로 해석된다.
신경제재단 행복도 조사에서 부탄이 2010년 1위를 차지했다가 지난해 56위로 떨어졌다는 사실도 작용했을 것이다. 부탄은 늦게 시작된 근대화 과정에서 불거지는 사회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2015년 인구 10만명당 13.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률이 세계 20위권이다. 수도 팀푸 시내 곳곳에는 약물중독 방지 경고가 붙어 있다.
국민총행복위원회는 행복도 평가에도 이를 반영한다. 2015년 설문조사 때는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 경제 발전, 문화 보전과 증진, 생태계 보전, 투명하고 참여도 높은 의사결정 과정이 4개 축이 되었다. 9개 지표는 생활수준, 교육, 건강, 문화적 다양성과 복원력, 공동체 활력, 심리적 웰빙, 시간 사용, 생태적 다양성과 복원력, 굿 거버넌스다.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가중치가 다르다. 노동시간과 수면시간(50%), 도시문제·정치참여(40%) 등의 가중치가 높다. 1인당 소득·자산·주택(33%)의 가중치도 높은 편이다. 이 같은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국민총행복위원회가 설문조사 때 경제적 요소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향점이 단순히 ‘가난해도 행복한 나라’를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난하지만 국민이 행복한 나라, 부탄에서 배워라”라는 낡은 화두를 던지고 싶다. 올 봄 ‘부탄 행복의 비밀’이란 책을 낸 박진도 원로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헬조선에 살고 있는 우리는 부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달한 우리나라는 이미 행복을 위한 물적 토대는 충분히 갖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장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국민행복의 관점에서 새롭게 개조하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같은 지표로는 한 사회의 경제를 측정할 수 없다는 반성과 함께 국내총행복(GDH)이 새로운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알려진 부탄의 한 마을에서 주민이 밝게 웃고 있다. 한겨레신문
우리는 우리대로, 부탄은 부탄대로 살아갈 길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와 문화는 물론 현재의 지정학적 위치 또한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니 다르게 살면 될 것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라고 본다. 18세기에 만든 옛 부탄 왕국 법전은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고 못 박았다. 역사와 문화 차이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2017.10.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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