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 트루먼과 맥아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4월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를 미국 극동군 총사령관 겸 유엔군 총사령관 직에서 전격 해임했다. 맥아더의 해임은 자초한 것이었다. 1950년 10월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참전으로 궁지에 몰린 맥아더는 계속 확전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확전 주장은 중공군 개입 예측을 하지 못한 데 대한 무마용이기도 했다.

맥아더는 또 중공군이 밀려오자 만주에 26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무모한 주장은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한 트루먼에 의해 거부됐다. 그러나 해임된 맥아더는 개선장군처럼 귀환했다. 의회는 그가 해임된 것이 적절했는지를 따지는 청문회를 열었다. 그에게는 특별히 고별연설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 연설에서 맥아더는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원수와 트루먼 대통령 사이의 일화는 미국사회에서 ‘문민통제’ 원칙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군의 정치 지배를 배제하기 위해 모든 민주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원칙이다. 군보다 민간이 우위에 선다는 이 원칙에 따라 군 통수권도 문관인 대통령이나 총리가 갖는다.

이라크와 전쟁 중인 미국에서 문민우위 원칙이 흔들리는 듯한 조짐이 보인다. 최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에 대해 예비역 장성들의 사퇴 요구가 잇따른 것을 두고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내린 진단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군부 반란의 이면’이란 칼럼에서 “이번 사태는 1951년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을 해임한 이래 군과 행정부 사이의 가장 심각한 공개적 대립”이라고 지적했다.

홀브룩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대부분 ‘문민통제’ 원칙을 존중하고 있지만 이번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예비역 장성들은 현역으로 남아 있는 자신의 동료나 후배를 대변해 발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그 발언이 럼즈펠드뿐만 아니라 그 위의 대통령과 부통령을 겨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 스킨헤드  (0) 2006.04.26
[여적] 공산당과 자본가  (0) 2006.04.20
[여적] 시베리아 호랑이  (0) 2006.04.09
[여적] 유다 복음  (0) 2006.04.05
[여적] 김민기  (0) 200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