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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푸틴과 표도르 

러시아의 강자 두 사람이 만났다. 최고권력자 블라디미르 푸틴과 종합격투기의 영웅 표도르 에밀리아넨코다. 며칠 전 푸틴 총리가 모스크바에서 표도르와 미국 선수가 대결을 벌인 경기장을 찾은 것이다. 최근 3연패의 수렁에 빠졌던 표도르가 이날 모처럼 승리를 거두자 푸틴은 링 위로 올라가 그를 축하했다. 그런데 좀체 있을 것 같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2만여 관중이 ‘우’ 하는 야유와 휘파람을 보냈다. 푸틴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푸틴과 표도르

푸틴은 표도르를 옛 러시아의 전사 ‘보가티르’라고 칭송하며 박수를 유도해 곤경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 러시아 안팎에선 내년 4월 대통령직 복귀를 선언한 푸틴에 대한 식상함, 피로감이 실체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푸틴은 격투기 영웅 표도르가 자기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호재라고 생각한 듯하지만 도리어 역효과를 본 셈이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인 푸틴의 이미지는 ‘강함’이다. 이 유일한 밑천이 잘도 먹혀들었다. 그만큼 러시아의 추락은 끝이 없었다. 2000년 대선 후보 때부터 ‘제르자바(강대국) 건설’을 외치며 체첸을 침공했다. 러시아를 수렁에서 건져낼 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다. 푸틴은 시베리아 호랑이와 북극곰, 캄차카 고래 사냥을 하고 옛 아이스하키 스타와의 경기 장면 등을 연출해 강한 남자의 이미지를 뽐내기도 했다. 이번 표도르전 관전도 그 연장선에서 새로운 소재를 발굴한다는 게 뜻밖의 차질을 빚은 경우라고 봐야 한다. 도리어 푸틴의 대통령 3선까지는 바라지 않는 민심의 일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지 정치가 가진 한계라고 봐야 한다.

눈을 우리 쪽으로 돌려보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치에는 이미지 연출적 요소가 분명히 있지만 문제는 그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근한 예다. 이 대통령의 당선은 노무현 정권의 경제도탄론이 부풀려지고, 상대적으로 경제를 살릴 지도자의 이미지가 부각된 데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당선된 그가 실제로 경제 분야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게 있는지 따져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이미지 과대포장이 빚은 참사라고나 할까. 이미지보다는 콘텐츠가, 좀 더 직설적으로는 포장보다 내용물이 중요하다. 이미지는 미망으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입력 : 2011-11-22 21: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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