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우리 당의 기본 정치철학이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이해찬 대표)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고도 절실한 명제다.”(박광온 최고위원)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 연 민주당 소속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참석자들은 ‘차질 없는 지방분권 추진’ 의지를 다졌다. 민주당 정부만 그런 건 아니다. 역대 정부는 수도권 인구분산과 균형발전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고심해 왔다. 그러나 그저 말뿐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이런 말을 구두선(口頭禪)이라 한다.

1960년대 서울 광화문 네거리

증거는 차고 넘친다. 지난 21일 한겨레신문은 ‘극에 달한 수도권 쏠림…총인구의 50% 첫 돌파’라고 보도했다. 통계청이 최인호 의원(민주)에게 제출한 ‘최근 10년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추이’를 보면 7월 1일 기준으로 한국 인구는 5170만9000명인데 수도권 인구는 2584만4000명(49.98%), 지방 인구는 2586만5000명(50.02%)이다. 지방 인구가 2만1000명(0.04%) 많을 뿐이다. 이 전세는 8월이나 9월 중 역전될 것 같다.

서울·인천·경기 지역인 수도권은 국토의 11.8%인데 이미 인구 절반이 몰려 산다. 통계청 계산으로는 2030년 전후로 한국의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이와 관계없이 수도권 인구 비중은 늘어난다.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다. 수도권 과밀화에 반비례해 지방 대도시 인구는 줄고 있다. 제2도시인 부산은 2010년 356만8000명이던 것이 2018년 344만1000명으로 줄었다. 대구, 광주, 대전도 추세는 마찬가지다. 인천만이 275만8000명에서 295만5000명으로 늘었다. 지방 중소도시들은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미 2016년 전국 지자체의 30%가량이 ‘소멸 위험 지역’이란 보도가 나갔다.

오늘날 서울의 모습

신도시를 마구 건설하는 정책도 수도권 집중을 부추기고 있다. 수도권 1기 신도시는 분당·일산 등 5곳에, 2기 신도시는 판교·파주 운정 등 10곳에 들어섰다. 현정부도 5곳에 3기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모두 20곳이다. 인구와 돈이 몰리든 말든 이런 정책을 쓰면서도 말로는 수도권 인구분산과 균형발전에 노력한다고 하니 이런 모순이 없다.

작가 이호철이 동아일보에 ‘서울은 만원이다’란 소설을 연재한 게 1966년이었다. 소설 속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서울은 넓다. 아홉 개의 구(區)에 가(街), 동(洞)이 대충 잡아서 380개나 된다. 이렇게 넓은 서울도 370만 명이 정작 살아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그 시절에도 서울은 만원이었다. 수치만 늘어났을 뿐(구가 25개, 행정동이 424개, 인구가 975만 명이 됐다) 서울은 그때나 지금이나 꽉꽉 차 있다.

서울 인구는 1992년 1090만 명을 정점으로 하향세인데, 아까 말한 대로 경기도에 대규모 신도시들을 건설한 탓이었다. 초만원인 서울 인구가 수도권으로 흘러넘친 셈이다. 덕분에 경기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강준만 교수는 책 ‘바벨탑 공화국’(2019)에서 풍부한 사례를 동원해 서울의 초집중화 폐해를 분석하는데, 그중 이런 것도 있다. “다산 정약용은 위대한 선구자요 개혁가였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인물조차 죽기 전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텨야 하며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서울 인구는 조선 초에 10만 명, 조선 말엔 20만 명이었지만, 1988년 1000만 명을 돌파했고 여타 수도권을 합해 전체 인구의 절반을 거느리게 됐다며 “정약용의 경고는 놀라운 선견지명”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중앙 지향성은 뿌리가 깊다는 설명이다.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란 속담도 떠오른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는 수도권으로의 중앙 집중화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다”라고 개탄한다.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에서다. 그는 “비민주적 사회의 특징은 정치·경제·군사·문화적 권력과 영향력이 단일 중심으로 응집되어 있다는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국토의 0.6%에 불과한 서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면서 모든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게 된 형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수도권 초집중을 막으려면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실천하는 것 뿐, 무슨 기발한 정책은 없다. 그런데 ‘서울은 만원이다’란 소설이 나온 게 53년 전이다. 그냥 체념하고 살아야 할까.  2019.08.28 09:58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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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은 지켜야 한다. 이 말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안 지켜지는 공약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올해 초 청와대는 대선 공약사항인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보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호와 의전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최저임금 공약도 파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시급)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면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내년도 최저임금이 8590원으로 결정됐을 때도 다시 사과했다.

공약은 지키는 게 당연하지만 예산 문제나 사정 변경 등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문재인 대선 후보도 2017년 4월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를 내놓았다. 387쪽 분량에 4대 비전과 12대 약속, 201개의 실천약속을 담았다. 이를 ‘세부약속’으로 나누면 888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상당수는 잊힐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정권의 명운을 걸고 지켜야 할 공약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공약집 발간사에 언급된 ‘촛불민심’을 구현하는 공약들 말이다. 최저임금 공약은 사소해 보일 정도로 중요하고 포괄적 의미를 담은 공약이 있다. 바로 ‘비정규직 감축 및 처우개선’ 공약이다.

광화문 광장서 전국노동자대회…5만3000명 참석 7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노동자 총파업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비정규직 철폐, 차별 해소, 처우 개선 등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어올리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민주노총 추산 5만3000명이 참가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문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2017년 5월 12일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는 “우선 공공부문부터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인천공항공사는 비정규직 비율이 85.7%로 공공기관 가운데 가장 높았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구체적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간단치 않다.

월급쟁이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

인천공항공사와 노사는 그 뒤 협력사 비정규직 1만명 가운데 보안·검색 인원 등 3000명을 직접 고용하고 나머지 비정규직 7000여명은 자회사 2곳 소속으로 정규직 전환을 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노조는 ‘비정규직 제로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자회사 정규직이 됐을 뿐 사실상 간접고용 노동자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무늬만 정규직화’다.

공약집엔 이렇게 쓰여 있다.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원칙 정착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감축하겠습니다” OECD는 ‘임시 노동자’란 개념을 쓰고 있는데, 2017년 기준 한국의 임시 노동자 비중은 20.6%로 OECD 국가 평균보다 2배가량 높다.

또 함부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릴 수 없도록 하는 ‘사용사유 제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진전이 없다. 며칠 전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사용사유 제한 4법’을 발의했을 뿐이다.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을 제정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한다고 했으나 관련된 법제도 개선안도 소식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것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은 661만4000명으로 전년보다 3만6000명 늘었다. 2008년(544만5000명)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110만명 이상 증가했다. 비정규직 비율도 2014년 32.2%에서 꾸준히 소폭 올라 지난해 33%였다. 월급쟁이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지난해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급여는 정규직이 300만9000원, 비정규직이 164만4000원이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월 급여는 2010년 이래 54%~56%로 정규직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한국사회가 회피해서는 안되는 문제

이렇게 차별받는 게 일상인데다 정규직화 또한 더디고 이름뿐이다. 이런 상황이 큰 규모의 파업을 불러온 것은 필연이었다. 지난달 초 급식실에서 일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공공무문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사흘 동안 역대 최대 규모로 총파업을 벌였다. 비정규직들은 “학교 안은 카스트처럼 계급이 나눠져 있다”, “우리는 ‘급식실 이모님’으로 불린다”며 처지를 개선해 달라고 호소했다.

비정규직 해결,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사회가 절대로 회피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정부는 이 공약 이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두려운 것은 무능 좌파정권이라며 장외투쟁을 일삼는 한국당이 아니다. 비정규직이 넘치는 현실이다. 2019-08-21 05:00:16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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