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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트럼프, 이번엔 미국판 ‘색깔론’ 꺼냈나?

지난 3일  러시모어산을 배경으로 연설하는 트럼프 @사진 연합뉴스

 부동산 재벌에서 미국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의 사저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마라라고’다. 스페인어로 ‘바다에서 호수로’라는 뜻이라고 한다. 트럼프는 자서전인 <거래의 기술·TRUMP:The Art of the Deal·1987>에서 방이 118개나 되는 집의 구입 경위를 밝히고 있다. 말이 집이지, 중세 유럽의 영지(領地)나 다름없는 이 주택의 시장 가격은 2500만 달러였다. 줄다리기 협상 끝에 그는 현금 500만 달러로 구입하는데 성공한다. 이 일화만 봐도 그가 얼마나 탐욕적이면서도 치밀한 성격인지 알 수 있다.

 본론에 앞서 어릴 적 일화 한 토막이다. 나에겐 1960년대 미국 드라마 ‘전투(Combat)’의 추억이 있다. 어릴 적 흑백 TV로 본 이 전쟁 드라마는 흥미진진했다. ‘짜자자잔짜잔···’ 하는 시그널 뮤직과 인간미를 풍긴 분대장 선더스 중사 이름이 기억난다. 미군은 연전연승, 독일군은 늘상 패했다. 어린 마음에 “미군은 우리 편이고 따라서 좋은 편이니까”라고 생각했다. 철들어 그게 문화제국주의의 세뇌 탓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미국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결정적 계기는 2001년 발생한 뉴욕 9·11 테러였다. 당시 신문사 국제부장으로 있을 때 발생한 이 뉴스를 야근 기자로부터 듣고 경기도 일산에서 회사까지 전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이 테러로 약 3000여명이 숨졌다. 뉴욕 쌍둥이 빌딩의 거대한 화염 속에서 악마의 형상이 보였다고 했을 만큼 묵시록적 사건이었다.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2002년 부시는 국정연설에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 3개 국가, 즉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했다. 이라크에는 전쟁을 일으켜 정권을 교체하기도 했다. 2017년 집권 1기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 등에서 ‘불량국가(Rogue State)’라는 용어를 꺼냈다. 

 2025년 1월 트럼프가 다시 집권했다. 튀르키에 앙카라에서 지난 8일 개최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공산주의는 2차 세계대전과 9·11 테러(2001) 보다 미국에 더 큰 위협(communism is a bigger threat to the US than both World Wars and 9/11)”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그는 지난 4일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3일(미국 중부 사우스다코타주), 4일(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같은 어조로 공산주의를 맹렬히 비판했다. 특히 러시모어산은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새겨진 암벽으로 유명하다. 미국 정치권 일각에선 다섯 번째 조각상의 주인은 트럼프란 주장도 나온다. 황당해 할 것 없다. 내란·외환죄로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한 윤석열을 지지하는 한국인들도 적지 않으니까. 트럼프는 나토 정상회의를 기회로 전세계를 항해 반 트럼프 진영을 향한 이념 공세의 고삐를 당긴 것이다.

 알만한 사람은 안다. 이게 뻔히 보이는 엄포용이라는 것을. ‘공산주의 위협’이라는 허수아비를 내세워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용도란 걸. 생각해 보라. 소련과 동유럽권이 무너진 게 35년 전인데, 이제 와서 공산주의 위협 운운이라니? 시대착오도 이런 시대착오가 없다. 이를 두고 많은 언론들이 쓰는 용어가 있다. 이른바 적색공포(Red Scare)다. 인터넷 신문 <민들레>의 한승동 에디터는 지난 9일 칼럼에서 이를 두고 250주년 건국 기념식에서 되살려낸 ‘적색공포’라고 썼다.
 
 사실 미국 역사를 살펴 보면 우파·보수 진영과 좌파·진보 진영 사이에 수많은 갈등·대결이 벌어졌다. 우선 뉴딜 정책이 시행된 1930년대를 보자. 당시 미국 사회는 대공황으로 경기침체가 극심해지고, 수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1933년 들어 선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민주당 정부는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국가적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밖에 기대할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정부개입은 뉴딜 정책으로 구체화됐다. 이는 정부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경제·사회 문제에 적극 개입하려는 시도였다. 자연스레 ‘뉴딜 진보주의(New Deal liberalism)’로 불리는 이념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이념이 순탄한 길을 가지는 않았다. 보수·극우세력들이 자신들을 공산주의자와 동일시하는 억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트럼프가 최근 색 바랜 ‘공산주의 위협’을 꺼낸 것이다. 

 매카시즘(McCarthyism)도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은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 전역을 휩쓴 소련 간첩에 대한 공포, 공산주의자 색출 광풍, 그리고 미국 내 좌파에게 가해진 정치·사회적 탄압을 일컫는 단어로, 의혹을 제기한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 상원의원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대 초반에 해당하는 그 시대는 매카시 시대, 혹은 2차 적색공포(Second Red Scare)라고 불린다.
 우리도 과거 “너 빨갱이지?”란 말 한마디로 모든 걸 무력화시킨 역사적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