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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민주주의를 위한 ‘내전’ 한국 정치가 내전적 상황이거나, 적어도 정신적 내전상태로 가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과격한'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지난달 말 관람한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사진전(세종문화회관)이 잠재된 ‘내전의 추억’을 깨우는 계기가 됐다. 추억이라 한 건 우리에겐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의 원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전에는 그 유명한 ‘쓰러지는 병사’도 걸려 있었다. 카파가 1936년 첫 종군한 스페인 내전 때 코르도바 전선에서 찍은 것으로, 한 공화파 병사가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그는 무엇을 위해 공화파 진영에서 싸우다 이런 최후를 맞게 됐을까. 요즘 대선불복론을 갖고 말이 많지만, 스페인 내전에도 비슷한 성격이 있었다. 총선에서 좌파 인민전선.. 더보기
송전탑 밑에서 욕하면서 닮는다고, 미국 전 대통령 부시 유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면서도 왕왕 이분법에 빠지는 나를 본다.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눠지며 나는 언제나 선이다.” 이게 이분법적이고 독선적인 부시식 세계관이다. 이분법적 세계관은 위험하다. 이분법에 익숙한 시각을 교정하는 데 유익한 기사를 9월14일자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읽었다. 이 잡지는 ‘종의 다양성’ 특집에서 “경제성장이 종의 소멸을 막는 데 기여한다”는 결론을 냈다. 성장과 보전이 늘 충돌하는 가치란 통념을 깬 것이다. 가령 한반도의 남한은 지난 수십년 동안 고속성장한 나라인데, 숲이 잘 보전된 편이다. 반면 북한은 숲이 1년에 2%씩 지난 20년 사이 3분의 1이나 사라졌다. 인간의 성장에 수반하는 과학적, 기술적 진보는 다른 종들에게 혜택을 준다... 더보기
국민적 저항, 누구 몫인가 두 주 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적 저항’이란 말을 썼는데 용례가 독특했다. 그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만난 이튿날 국무회의에서 “야당에서 장외투쟁을 고집하면서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저도 야당 대표로 활동했고 어려운 당을 일으켜세운 적도 있지만 당의 목적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말인즉슨 민주당에 준엄한 경고를 발한 것이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시간이 좀 지났더라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어수선한 현 정국을 파악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국민적 저항’이란 말의 쓰임새가 생뚱맞다. 국민적 저항은 권력을 전제로 한다. 즉 권력·정권에 대한 저항이다. 야당도 또 다른 권력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 더보기
무서운 게 역사다 역사는 왜 배우나. 리처드 패어스(1902~1958)란 영국 역사가가 색다른 말을 했다. “25살 미만의 청소년은 역사를 공부해서는 안된다.” 요즘 역사교육 강화다 수능 필수화다 해서 가뜩이나 부담이 큰 학생들이 솔깃해할 얘기 같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좋은 역사(good history)는 돈이나 과학처럼 유익하지는 않지만, 나쁜 역사(bad history)는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보다 더 무서운 해독을 끼친다.” 다른 게 아니라 어린 정신에 주입되는 잘못된 역사교육의 해독을 고발한 것이다. 이런 패어스를 좀 삐딱한 좌파 역사학자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는 보수주의 사가다. 그는 ‘나쁜 역사’에 대해 경고했다. 여기서 역사는 사건 그 자체로서의 객관적 역사가 아니라, 책으로 기술된 주관적 역사.. 더보기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이야기 이런 나라가 무슨 소용인가. 며칠 전 TV에서 본 화성 뉴스가 각별하게 느껴진 건 유치환이 시 ‘생명의 서’에서 한 것처럼 ‘독한 회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시인의 회의는 자아와 생명의 본질에 관한 것인 반면, 나는 국가의 의미에 대해 회의하고 있었다. 뉴스는 ‘마스 원’이란 네덜란드 회사가 화성 정착민을 모집하고 있는데 넉 달 사이 지원자가 120여 나라에서 10만명이 넘었다는 거다. 2023년 첫 정착민 4명을 우주선에 실어 보낸다고 한다. 성사 가능성도 미지수지만, 이 화성 여행은 편도라서 지구로 돌아올 기약은 없다. 또 그곳 삶은 엄청나게 악조건이다. 산소가 부족하고 일교차는 90도나 되며 방사능은 예측불가능하다. 중력은 지구의 38%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주복을 입고 생명유지 장치가 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