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파문 와중에 두 가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과 문창극 총리 후보자 사이의 ‘갑을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둘째는 이 문제가 갈수록 코미디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적어도 각료와의 관계에서 대통령은 영원한 슈퍼갑이다. 주요 이슈에 대해 말을 극도로 아끼는 대신 위압적 카리스마를 뿜어낸다는 박 대통령의 슈퍼갑 지위는 상당 기간 지속가능해 보였다. 한데 이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문 후보자가 갑, 박 대통령이 을인 것 같다.
문 후보자의 문제 발언들이 공개된 직후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박 대통령은 임명동의안 국회 제출을 귀국 이후로 미뤘다. 당초 청와대는 인사청문 요청안을 출국 당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가 하루 연기했었다. 이렇게 계속 미루는 건 여론이 워낙 안 좋기 때문이다. 최근 박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1.4%로 취임 후 최저로 떨어졌다. 이는 문 후보 친일발언 보도 후 10% 포인트나 급락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놓고 말은 못하고 문 후보자 스스로 사퇴해줬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아스타나 대통령궁에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가진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아스타나=뉴시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문 후보자는 20일 출근길에도 “나는 청문회 준비만 열심히 하고 있다”며 사퇴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전날엔 자기가 쓴 칼럼을 낭독하며 “안중근, 안창호를 존경하는데 왜 내가 친일인가”라고 항변했다. 그가 최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땅에서 살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 와중에 극우 인사들이 문 후보자를 적극 지지하고 나서 문제가 더욱 희화화 하고 있다. 지만원씨는 “문창극은 박근혜가 잠시 필요해서 씹다가 뱉어내도 되는 껌인가?” “문창극 대통령 될까 무섭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빨 세력’이 장악한 언론이 촉발한 불량 여론에 촉각 세우는 박근혜를 비난하며 “문창극, 버티면 청문회 열린다. 절대 포기마라”고 독려했다. 조갑제씨도 “문창극 파동은 좌경 선동 세력에 부화뇌동하는 가짜 보수를 가려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확실히 박 대통령은 잘 있는 사람 불러다 무엇 만드는 데 재주가 있나 보다. 문 후보자도 잘 있는 극우 기도교 근본주의자 정도였다. 그것이 국가적 망신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낙인찍혀야 할 죄는 아니다. 죄라면 다만 총리가 되기에는 절대 모자라는 균형감각이었다. 박 대통령은 그걸 모르고 무리하다 졸지에 을의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정치가 코미디가 되는 것도 비정상의 정상화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