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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이분법

이분법이 나쁘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저 색깔론의 달인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마저 그런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원내대표 시절 “세종시 논의가 흑백과 선악의 이분법적 논리로 접근해 투쟁적으로 흘렀다는 점에서 유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간 좌파정권의 편향된 교육으로 인해 법치주의가 약화돼 아동 성범죄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성범죄에도 색깔을 입힌 것인데 알다시피 이런 색깔론이야말로 대표적인 이분법적 사고의 소산이다. 
 
이분법적 사고는 세상만사를 둘로 나눈다. 모든 것이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 흑과 백,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구분된다. 조지 부시가 9·11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세계를 선과 악, 미국 편과 적으로 나눈 것은 유명하다. 그때 부시의 사고구조를 분석하며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이란 말이 자주 쓰였다. 

당연히 그 폐해가 심각하다. 모든 것을 양극단으로 나누다보면 중립, 중간지대가 없다. 시장경제 아니면 좌파이고 좌파는 빨갱이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사이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중도는 부정된다. 따라서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는 사고의 유연함을 잃는다. 유난히 쏠림현상이 심하다. 한편으로 우르르 몰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 버린다. 파시즘이 지배하는 사회는 끊임없이 사상과 정체성을 묻고 감시한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다시 이분법 문제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는 이번 진보정당 통합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3대 세습 반대입장을 채택하자는 진보신당의 요구를 ‘분단의 이분법’이라며 거부했다. 북한을 비판하지 않으면 북한 찬양이라는 분단의 이분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이분법 논리는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본다. 북한 세습 비판을 이분법적 문제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보수진영이 그렇게 공격한다고 했지만 지금 상대는 보수가 아니라 진보진영이다. 이 문제는 중도적 입장에 설 여지가 없다. 또 세습을 비판하는 것과 체제를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애정어린 비판이란 것도 있는 법이다. 북한 세습은 진보가 회피해서는 안되는 것이란 점에서 결단의 문제다.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을 정시하지 않고 반(反)이분법이란 자의적 방패 뒤에 숨음으로써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남기는 것은 온당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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