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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문학하는 이유

 

작가는 왜 쓰는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이 서른에 야구장에 가 프로야구를 관전하던 중 2루타가 터지는 것을 보는 순간 소설을 쓰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무슨 영감 같은 게 섬광처럼 번뜩 스쳐갔나 보다. 이건 그가 글을 쓰는 직접적 이유는 아니지만 아무튼 꽤나 독특한 계기다. 왜 쓰는가. 작가들이 끝없이 부딪치고 또 스스로 물으며 고뇌하는 질문이다.

젊은 시절 좌파 아닌 사람 없다고 하듯, 젊어서 한때 문학에 뜻을 두어 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필자도 소설이 좋았는데, 거창하게 문학관이라고 할 건 없지만 상상의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때 정치 현실은 엄혹한 독재였다. 당연히 문학은 이런 현실의 감춰진 진실을 ‘안간힘을 다해’ 드러내는 것이어야 했다. 순수·참여문학 논쟁도 벌어지곤 했지만 문학이 시민성, 저항성, 뭉뚱그려 정치성을 잃는다는 건 상상조차 어려웠다.

 

소설가 공지영은 "작가가 정치와 사회를 다루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잘못된 정치 때문에 찢기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람의 삶을 다루는 문학에서 정치가 빠지면 그게 더 이상한 거란 생각을 하고 있다. '고요한 돈강'의 작가 미하일 숄로호프는 1965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 책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맑게 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류의 진보를 위한 투쟁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난 행복합니다."



소설가 공지영이 그런 생각을 풀어놓았다. 엊그제 책 출간에 맞춘 기자간담회에서 “쓰는 고통보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더 힘들어서 시작한 것”이라는 말을 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자신의 르포르타주 <의자놀이> 얘기다. 귀기울일 말이 더 있다. “문학이란 사람의 삶을 다루는 것이고 그 삶 안에는 정치, 사회, 사람, 노동, 아픔이 다 들어 있다. 작가가 정치와 사회를 다루는 건 당연한 거다. 정치만 안 다루는 것이 훨씬 더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공지영은 매우 현실참여적인 작가다. 장애인학교에서 자행된 성폭력 사건을 고발한 <도가니>도 그런 책이다. 문재인 대선 후보 멘토단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대단한 의식화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된 것 같지는 않다. 누구도 그를 정치적 작가로 규정하지는 못할 거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옆에서 울부짖는 사람이 많으면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제가 소위 정치활동을 한다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잘못된 정치 때문에 찢기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뜻 같다.

문학을 순수니 참여니 ‘촌스럽게’ 구분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 따져보자. 그건 민주화 이후 이 땅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을 외칠 일들이 사라졌기 때문인가. 아무리 보아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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