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 더러운 거리, 더러운 과거

조폭의 사랑과 배신을 그린 영화 <비열한 거리>의 제목은 더러운 조폭세계에 대한 일종의 은유였지만, 옛날 서울 거리는 실제로 몹시 더럽고 위생도 엉망이었나 보다. 서울대 의대 신동훈 교수팀이 어제 공개한 사실이 그렇다. 서울은 온통 냄새 고약한 분뇨가 밟히는 더러운 거리였다. 조선 한양의 경복궁 담장,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아래, 시청사 부근, 종묘 광장 등 사대문 주요 지점의 지층을 조사한 결과 회충, 편충 등 기생충 알 여러 종류가 발견됐다. 이는 15~18세기 한양의 번화가에 인분이 널려 있었음을 알려주는 증거라는 설명이다.

 


     조선시대 한양 거리는 인분이 널려 있었을 것이란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조선 말기 서울 거리다.


 

덕분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 거리가 분뇨로 더러웠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옛날 프랑스에선 좋은 건물에 불결한 시설을 둘 수 없다며 화장실을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1661~90년 지어진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란 게 아예 없었다. 그 상태가 1768년까지 지속됐고 1789년 혁명 때까지 왕실용으로 겨우 9개가 생겼다. 파리 사람들은 요강을 거리에 비웠고 으슥한 곳에 용변을 보았다. 긴 드레스에 오물, 배설물이 묻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은 필수품이 됐다.

연구팀은 이번 작업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건강상태 등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적 차원을 넘어 이번 발견에 약간의 인문학적 해석을 가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역사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더러운 옛 한양 거리는 움직일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기생충 알 발견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향수를 뿌리고 미화한다고 해도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필자는 2001년 ‘좋았던 옛시절, 망각의 역사’란 칼럼을 통해 당시의 정치적 복고풍을 비판한 적이 있다. ‘옛날이 좋았어’란 푸념은 과거의 추악함을 망각이란 이름의 카펫으로 덮어버린다. 사회 일각에서 이승만, 박정희에게 바쳐지는 불가사의할 정도의 존경심은 왜곡된 노스탤지어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도 그런 유의 향수는 결코 사그라지지 않은 듯하니. 더러운 과거는 기억하기보다 망각·미화하는 게 쉽기 때문인가. 마침 국사편찬위원장이란 사람은 국감장에 나와 “독재도 때에 따라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 NLL 프레임  (0) 2012.10.19
[여적] 문학하는 이유  (0) 2012.10.16
[여적] 돌아오지 않는 철새들  (0) 2012.10.04
[여적] 안철수식 레토릭  (0) 2012.09.26
[여적] 새희망홀씨  (0) 201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