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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슬픈 1위

언제부터인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가 눈에 띄면 걱정부터 앞선다. 이번엔 또 뭐가 1위에 올랐나. 좋은 1위 말고 나쁜 1위 말이다. 이건 꼭 비관적이거나 패배주의적인 사고 탓이 아니다. 한국은 자살률부터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8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31.2명, 하루 평균 42.6명이다. 더 나쁜 건 OECD 국가들의 평균 자살률은 줄고 있는데, 우리는 급증세란 점이다. 어제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언론은 다시 이런 숫자들을 나열했다.

‘슬픈 1위’는 이것 말고도 많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8.5%로 역시 OECD 1위다. 노인 자살률은 10만명당 72명이나 된다. 이 밖에 별의별 분야에서 한국은 OECD 1위에 올라 있다. 성인 1인당 음주량, 간질환 사망률, 낙태율, 저출산율, 산재사망률, 이혼 증가율 따위가 그것이다. 2010년 한국인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193시간으로 멕시코의 2242시간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OECD 2위였다. 2011년 아동·청소년의 주관적 행복도 조사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23개 나라 가운데 꼴찌였다.

OECD 34개 회원국 간 비교는 전 세계 국가들과의 넓은 비교와 성격이 좀 다르다. 회원국 요건이 서방 선진국과 시장경제 체제의 다원적 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는 나라들 사이의 비교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 ‘제대로 된 나라’들과의 비교에서 한국이 불명예스러운 1위를 유난히 많이 차지했다는 건 성찰해봐야 할 대목인 것 같다.

 

 

개콘 '멘붕스쿨'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갸루상' 박성호. 한국의 각종 지표가  OECD에서 불명예스런 1위를 차지하고 있을 보면서 필자는 엉뚱하게도 갸루상이 퍼뜨린 유행어가 “사람이 아니므니다”가 아니라, “사는 게 아니므니다”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만큼 우리네 삶이 신산하다는 생각과 함께.



최근 유럽연합 산하 담배규제위원회가 OECD 22개 나라의 담배가격을 조사해 보니 한국이 2500원으로 제일 싼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아일랜드는 우리의 무려 6배인 1만4975원이나 됐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3~4배 값이었다. 싸다고 해봐야 우리보다 값을 1.3~1.5배 더 받는 폴란드, 일본, 슬로바키아 정도였다. 물론 한국엔 가령 초고속 무선 인터넷 보급률 100.6%로, OECD 1위를 차지하는 등 ‘좋은 최고’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것도 그닥 위로가 되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요란한 선진화 구호 속에 불행 쪽으로 떠밀려 가고 있지 않으냐는 생각 때문이다. 배려 없이 내동댕이쳐지는 삶으로. 가끔씩 요즘 ‘갸루상’의 유행어 “사람이 아니므니다”가 “(이건) 사는 게 아니므니다”처럼 들리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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