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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냐 침공이냐, 또는 작전?

김철웅 2026. 6. 8. 13:41

김춘수의 시 <꽃>이다.(1952년 발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략)

 그의 시로 이 칼럼을 시작한 건 ‘꽃을 꽃이라고 부르는 것’, 정명(正名)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전쟁일까, 아니면 침공, 또는 작전일까? 올해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합동 공습으로 시작돼 지난 8일로 100일째 전쟁, 협상, 휴전을 반복하고 있는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하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3일 이란 전쟁이 "4~5주 예상했지만 더 오래 할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개전 초부터 스스로 <작전·Operation>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왜 그럴까. 답은 미국 내 사정 때문이다. <전쟁권한법·War Powers Resolution>에 따라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60일 기한이 4월 말 끝나기 때문이다. 
 1973년 제정된 이 법은 대통령이 군사 행동을 개시하면 48시간 내 의회에 통보하고, 의회가 승인하지 않으면 60일 이내 철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침공을 시작하면서 <작전>을 표방한 건 의회를 우회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침공은 1979년 12월부터 1989년 2월까지 9년 이상 지속됐다. 소련이 개입한 이 전쟁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이 150만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련군 전사자도 15000명이나 발생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것은 ‘전쟁’으로 인식된다. 이중기준 아닌가. 지금도 구글링해 보면 <Soviet invasion of Aghanistan·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뜬다. 

 용어는 인식을 반영한다. 일반적으로 전쟁이라 함은 쌍방이 팽팽히 맞서는 걸 전제한다. 반면 침공은 통상 어느 한편이 상대편을 몰아붙이는 걸 말한다. 이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합세해 이란을 침공한 것이다. 근데 국내 대다수 언론은 중동전쟁이란 표현을 선호하고 있는 듯 하다. 관행적으로 쓰다 보니 전쟁이란 용어가 입에 붙어서일까. 이건 TV 라디오 신문 등 레거시 미디어나, 유튜브 SNS OTT 포털 등 디지털 미디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지난 2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사망하면서 전쟁은 시작됐다. 헤메네이 사망 직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비공식 협상에서 이란은 미국의 중대 관심사인 핵개발 문제에 잠정 합의한 바 있다. 이란이 450㎏ 규모의 고농축 우라늄을 국내에 보유하지 않고 제3국으로 반출하거나 단계적으로 희석하는 방안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주권적 통제 인정,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피해 배상 등 네 가지 요구를 제시했다. 반면 미국은 핵무기 개발 포기 말고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공격 및 통행 차단 중단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레드라인·넘어서는 안 되는 마지막 선>이 명확히 충돌하면서 최종적 타결은 이뤄질 수 없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뒤를 이어 최고 권좌에 오른 그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56)

 미국은 과거에도 중동에서 몇 차례 전쟁을 벌인 전력이 있다. 부시 행정부는 2003년 3월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으며, 9·11 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 한 달 동안의 전쟁이 끝난 뒤 국제 이라크 사찰단은 1년이 넘는 조사 끝에 2004년 10월 최종보고서에서 “지난해 미국의 침공 때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시점에서 참고할 만한 책이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출간된 <The Trillion Dollar War Machine: How Runaway Military Spending Drives America into Foreign Wars and Bankrupts Us at Home>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월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기계의 야망>이란 제목으로 번역판이 나왔다. ‘전쟁기계’란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를 말한다.
 책은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만 최소 4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은 ‘전쟁기계’의 내부 구조를 추적한다. 이 책이 그리는 미국의 전쟁기계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 80개국에 걸쳐 약 750곳의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17만 명에 달하는 상시 주둔군을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내년 군사 예산을 1.5조 달러로, 올해보다 50%나 증액하려 한다. 이 책이 예견한 액수의 1.5배다. 미국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4년부터 1975년까지 벌어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패했다. 1947년 미국은 그리스 내전에 개입했다. 1945년에서 50년대 초반까지 필리핀 농민군 진압을 위해 병력을 투입했다. 1954년 과테말라는 미국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비밀공작으로 정권교체를 겪었다. 1959년 쿠바혁명은 미국의 개입으로 좌절될 위기에 처했다. 1970년대에 니콰라과와 엘살바도르, 1980년대와 90년대에 그레나다와 파나마는 미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