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의 추억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69>가 많은 인기를 끈 데는 이유가 있다. 1960·70년 당대의 디바 김추자가 부른 데다, 월남전이 한참 벌어지고 있는 중에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가사를 보자.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너무나 기다렸네
굳게 닫힌 그 입술/ 무거운 그 철모
웃으며 돌아왔네
어린 동생 반기며/ 그 품에 안겼네
모두 다 안겼네... <하략>
(베트남도 한자문화권 국가이고 이 한자어 국명을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 ‘월남(越南)’이다. 요즘엔 베트남으로 굳어졌다.)
그뿐 아니라 1966년 10월 1일 한국 체신부는 <전투사단파월1주년기념> 우표도 발행했다.

우리 군대의 베트남 전쟁 참전은 1964~1973년의 일로, 32만명이 파병돼 5100명이 전사했다. 2만명이 고엽제 피해로 고통받기도 했다. 참전 댓가로 미국으로부터 경제원조 자금 및 경부고속도로 건설 자금 등을 지원 받았다. ‘미국의 용병’ 시비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유다.
군가 ‘맹호들은 간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유통일 위해서/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2)-1절
개인적 이야기 몇 마디 하겠다. 나는 서울 서대문국민(지금은 초등)학교 출신인데, 이 노래를 학교 운동장 등나무 스탠드에서 신나게 합창한 게 기억난다. 학교 주소는 중구 정동 28번지이다. 유호가 작사하고 이희목이 작곡한 이 노래가 나온 건 1966년으로,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었다.(1970년 졸업한 뒤 1982년 그 옆 정동 22번지 경향신문에 들어가 31년간 근무하다 퇴직했다. 정동과 나는 질긴 인연이 있지 않았나 한다. 서대문 국교가 1973년 폐교되고 그 자리에 들어선 게 창덕여중이다.)
미국은 여러 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등의 참전을 이끌어냈다. 한국의 경우 이 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였는데, 이처럼 대규모의 한국군 파병은 한국과 미국 양측의 이해관계가 합치된 결과였다.
이 칼럼을 쓰면서 조진석 님(평화로운 아시아를 위한 나와우리 대표)이 지난해 12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읽었다. 제목이 <민주 문명국가 중 유일한 파병…한국의 베트남 참전, ‘명예’가 아닌 이유>였다. 부제는 <다시! 리영희, 베트남 전쟁 종전 50주년, 한국은 여전히 베트남을 기억해야 한다>이다. 작고한 리영희 선생은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바로 알자>는 책을 통해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 골자는 이렇다.
"1965년부터 8년 동안 국군 연 33만 명(상주 병력 5만 명)을 전투에 파견한 그 전쟁은, 사실은 베트남인민이 160년에 걸친 프랑스·일본·미국의 식민지·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민족 해방·독립전쟁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미국 국민은 자기 정부가 시작한 제2차 베트남전쟁을 프랑스가 일으킨 제1차 베트남전쟁과 마찬가지로 현대사에서 가장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라고 불러 반대했던 것이다. 미국 청년·대학생 37만 명이 베트남전쟁 징집을 거부했다(현재의 클린턴 대통령 포함). 베트남전쟁 기간에 미국 군대의 장병 수만 명이 탈영했고 수만 명이 도주했다. 불명예제대가 56만 3000명이나 되었다."
"긴 베트남전쟁 기간 중 세계의 민주적 문명국가는 한 나라도 미국을 위해 파병하지 않았다. 세계 제1차, 2차 대전에서 미국에 의해 멸망의 위기에서 건져진 미국의 형제국인 영국이 영국군 ‘의장대 6명’을 베트남에 보냈을 뿐이다! 의장대 6명!!"
<파병의 추억>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문제가 있다. 소말리아에서 활동하는 청해부대 투입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때는 국제적인 반테러 및 평화유지 활동의 일환으로 이라크에 자이툰부대를 파병하기도 했다.
한 페친이 16일 쓴 글로 마무리한다.
<미국의 이란 침략에 동참하는 건 헌법 제5조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위반, UN헌장 1조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이를 위하여 평화에 대한 위협의 방지·제거 그리고 침략행위 또는 기타 평화의 파괴를 진압하기 위한 유효한 집단적 조치를 취한다” 위반이다. “사진 찍으러 미국 가지 않겠다”며 미국에 ‘NO’ 할 거라 기대하게 했던 노무현 정권의 첫 번째 도덕적 파산이 이라크전 파병이었다. 이재명 정권은 부디 노무현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길 빈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