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칼럼

<데스크칼럼> 일본극우 한국극우

김철웅 2026. 1. 13. 12:09

 2002.09.22 18:35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더니 북·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 극우와 한국 극우들이 벌이고 있는 행태가 예사롭지 않다. 일본 극우언론과 논객들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사과하자 들끓기 시작했다. 북·일 수교협상 중단론이 공공연히 주장되는 가운데 기세가 오른 법무상은 북한의 납치 책임자를 일본 법정에서 단죄해야 한다고 호기를 부렸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국가범죄’로 규정해 책임소재를 밝혀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어렵게 일궈진 북·일 정상회담의 성과는 이 분노의 함성 속에 실종돼 버린 듯하다.

또 양국 중대 현안이었던 일본의 식민지배 과거청산 문제 역시 실종상태다. 납치문제의 와중에 일본은 가해자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둔갑했다. 과거사를 따지되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거대악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애써 외면하고 사죄하지 않는 일본 극우가 자국민 납치에 대해 보이는 통한의 반응은 기만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서글픈 것은 여기에 맞장구라도 치듯 준동하는 한국 극우의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북한과 일본은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셈이다. 이들은 일본의 자국민 납치문제 처리방식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성토에 나섰다. 일본은 몇명 안되는 납치문제에 단호한 대응으로 사과를 받아냈는데 대한민국은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우리도 한국인 납북자 문제는 물론 아웅산 및 대한항공 테러 사건에 대해 사죄를 받아야 한다면서 부끄러움과 ‘억장 무너짐’을 토로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의 억장을 그토록 무너지게 만들었을까.

사실 일본 극우의 행태가 그렇듯 한국 극우의 행태도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상황에 대한 몰주체적 단순화와 이중기준, 비약으로 점철된 극우 논리의 생리가 쉽게 교정될 리 없기 때문이다.

의심으로 번득이는 극우의 눈초리를 감수하고서라도 우선 제기해야 할 것은 ‘주체’의 문제다. 이 별난 극우들은 주체적 사고, 남북문제의 주체적·민족적 해결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일단 자신의 극우논리를 뒷받침해줄 만한 것이 있으면 일본이든 미국이든 강자의 편에 붙어서 북한과 햇볕정책을 질타할 수 있는 구실을 동원하는 데 진력한다.

“다카이치 역사관 규탄한다” 2026.01.12 20:52

#한·일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026년 1월 12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청와대 앞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역사관을 규탄하고, 이재명 정부에 과거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북·일간 현안의 해법을 남북문제 해법의 모델로 상정하는 비약도 그래서 나왔다. 민족현대사의 흐름과 분단 비극의 상호성, 그 해법의 복잡성 같은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그저 겉으로 드러난 현상으로 포장한 사(詐)논리의 판매가 관심사의 전부이다. 그러다보니 북·일 정상회담 후 “우리는 일본에 졌다. 그리고 북한에도 졌다”란 한탄어린 관전평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 극우는 미국의 한반도정책 변화에 대해 여과없이 반응하는 데 그 민첩성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미국이 햇볕정책이란 용어의 수정을 제안하면 그 의미를 따져보기보다는 즉각 “미국이 좋아하지 않는 햇볕정책을 수정·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서 통일의 대의에 대한 사려깊은 진지함은 눈곱만큼도 찾기 힘들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 상호주의를 거론하면 한술 더 떠 아시안게임에서의 인공기 사용에 대해서도 상호주의를 관철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것이 이들이다.

정작 극우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드는 것은 진정한 북한의 변화일 것이다. 김정일 체제가 예전처럼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호전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으로, 이른바 불량국가와 악의 축으로 남아있는 것이 이들의 ‘안보 장사’에는 훨씬 더 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통일비용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쏟는 반면 분단비용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이유도 이런 것이다. 그 비분강개의 이면에는 분단 고착화와 이에따른 기득권 고착화의 열망이 숨어 있다.

한국인 납치라는 ‘과거사’는 결코 잊지 않아도 친일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서는 숙명론을 들먹이며 망각과 미래지향성의 미덕을 강조하고 미국의 줄에 서야 하는 현실에 대해 설파한다. 군사독재시절 국가권력의 추악한 범죄를 들춰낸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활동에는 지극히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다가 북한의 국가범죄 대목에 가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이 이들이다. 비뚤어진 한국 극우의 특징은 분명 친일·친미의 뿌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과거사가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김철웅/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