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칼럼

<데스크칼럼> 반테러전쟁과 더러운 전쟁

김철웅 2026. 1. 11. 11:49

2001.09.18 19:12 김철웅·국제부장

지난주 미국에서 발생한 미증유의 동시다발 테러는 그 충격만큼이나 전세계에 미치는 파장도 메가톤급이었다.

세계경제가 겪을 테러 후유증도 심상치 않다. 테러 발생 6일 만인 17일 다시 문을 연 뉴욕증시는 폭락세를 면치 못했다. 사람들이 쌍둥이 빌딩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화염 속에서 악마의 얼굴을 보았다는 입소문은 이 사건의 묵시록적 성격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발생 초기 수천명의 무고한 희생자들과 복구작업, 테러범 수사에 쏠렸던 뉴스의 초점은 이제 테러와의 전쟁 쪽으로 옮겨졌다. 미국이 유력 배후 용의자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을 응징할 수 있을 것인지, 작전개시는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세계는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이 전대미문의 테러에 관한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하나의 흐름이 감지된다. 바로 미국 자체의 변화, 그 방향에 관한 것이다.

#9·11 테러 장면<위키백과>


미국이 대 테러 전략으로 이른바 ‘더러운 전쟁’ 불사 방침을 천명한 것은 향후 미국의 변화를 읽어내는데 중요한 단서다. ‘더러운 전쟁’이란 쉽게 말해 범죄자 등을 고용해 암살·고문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테러참사를 계기로 이제까지 정규병력을 동원한 정정당당한 전쟁에 병행해 암살같은 행위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니 부통령은 “국내외 대 테러전 수행은 현재 허가돼 있지 않은 ‘비열하고 더러운’ 정보전술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1976년 포드 전 대통령이 발효시킨 암살금지에 관한 대통령령을 포함, 관련 법률들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 현재 부시 행정부의 복안이다. 이번 테러로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의 자존심에 치유키 어려운 상처를 입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불의와 싸우기 위한 수단으로 비열하고 더러운, 즉 정의롭지 못한 정보전술을 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더욱이 이 ‘더러운 전쟁’은 아르헨티나의 추악한 군부독재가 자행했던 좌익소탕작전에서 유래한 용어다.

“미국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열린 사회’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열린 미국 경제의 인프라 스트럭처를 자유롭게 이용해 전쟁을 거는 자살테러범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번 테러사건을 다룬 특집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번 테러용의자들이 자유롭게 티켓을 구해 비행기를 타는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던 것은 미국이 그만큼 ‘열린 사회’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번 테러를 전쟁행위로 규정한 것은 일반적 테러행위 규정과 그 의미가 크게 다르다. 그는 이번 테러를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 사건이나 단순한 미사일 공격 대상이 아닌 ‘선전포고의 이유(casus belli)’로 취급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같은 미국의 전쟁의지에 대해 미국 국내외에서 신중론이 확산되는 것은 극단적 테러리즘 앞에서 냉정을 잃고 있는 미국에 대한 경고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설 때부터 우려됐던 미국의 보수·우경화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눈에 띄게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오래전 버렸던 ‘더러운’ 방법을 다시 채택한다는 것은 ‘열린 사회’의 명백한 후퇴이며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처사다. 미사일 방어망 추진 문제만 보더라도 반대하던 민주당이 이번주 예산 삭감노력을 포기한 것은 테러사건 후 미국의 변화기류를 보여준다. 테러 이후 대다수 미국인들은 외부의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미국의 방어할 수 있는 장치를 원하고 기꺼이 돈을 낼 것으로 보인다.

억울한 원혼들을 생각하면 ‘자업자득’과 같은 표현은 쉽게 쓸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미국의 지나친 이스라엘 편향이 결국 아랍세계의 미국 증오를 키우는데 많은 부분 작용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이번 사건을 놓고 사람들은 3차대전의 서막이니 문명간 충돌의 시작이니 해석을 내리려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더이상 무고한 인명살상을 피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다.

미국은 과거 중남미에서 ‘더러운’ 공작정치를 통해 수많은 좌익정권을 무너뜨리고 군사독재를 은밀히 지원한 전력을 갖고 있는 만큼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스스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