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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는 예술이 아니다?
김철웅
2021. 10. 11. 21:38
문화에 있어 끊임없이 편을 가르려는 경향이 존재해온 건 사실이다.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책 ‘유행의 시대(원제: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 2011)’에서 이렇게 썼다.
“선천적으로 ‘고급문화’라는 것, 엘리트 취향이라는 것이 있었고, 전형적인 중류층의 평범하거나 ‘속물적인’ 취향과 하류층이 열광하는 ‘천박한’ 취향이 존재했다. 그것들을 뒤섞는다는 것은 물과 불을 섞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은 진공을 꺼리지만, 문화는 혼합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다.

bts가 세계적인 음악가와 협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 ytn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저서 ‘구별 짓기’에서 문화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유용한 도구로 드러내 보이고, 의식적으로 계급 차이를 두드러지게 하고 그것을 보호하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문화란 계급 구분과 사회적 계층을 만들어내고 보호하려고 고안된 기술이다.”
바우만과 부르디외가 문화를 고급과 저급으로 편 가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 건 딱 맞는 분석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이분법’을 보면 그렇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정청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7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진행된 문화예술위원 공모 과정에서 대중문화는 문화예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자연 현 가수협회장을 원천 배제했다고 밝혔다.
정 의원에 따르면 이 협회장이 문화예술위원 공모에 신청을 하자 ‘내정자가 있고, 대중가요가 문화예술위원회에 들어온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납득키 어려운 이유를 들어 접수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결국 문화예술위는 문화예술의 범위를 순수예술·클래식으로 한정하고 12명 위원 전원을 순수 예술이나 학문 분야의 위원들로만 채웠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기금관리형 준 정부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가 이런 고루한 태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문화예술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설립목적에 이런 대목이 있다. “위원회는 문학, 시각예술, 공연예술, 전통예술, 다원예술 등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합의하고 있는 기초예술 분야와 문화산업의 비영리적 실험영역을 대상으로 그 창조와 매개, 향유가 선순환 구조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그것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역점을 둘 것입니다.”
기초예술 분야, 비영리적 실험영역…. 어째서 ‘대중가요가 문화예술위원회에 들어온다는 것은 모순’인지에 대한 해명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도리어 더 모호해질 뿐이다. 대중가수가 예술로 인정받아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중문화 홀대는 심해도 너무 심한 시대착오적 자세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론에도 불구하고 문화에는 순혈주의를 거부하고 뒤섞이려는 경향 또한 뚜렷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