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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 울분 사회, 출구는 없을까
김철웅
2020. 12. 16. 10:55
‘울분 사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울분 하면 떠오르는 소설부터 소개하고 싶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이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생각건대, 간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횡설수설로 일관한다.
‘나’는 증오심에 시달리며 삶은 우울하고 혼란하고 고독했다. 외부 세계에 대한 혐오는 자신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이 상태로 이십 년간 지하에 틀어박혀 있다. 그 바탕에 깔린 정서가 까닭 모를 울분이다.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
소설 속 ‘나’의 울분이 막연한 것이었다면, 오늘날 한국인들은 좀 더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울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발표한 ‘한국의 울분 2018~2020 연속조사 결과’가 그렇다.
2018년 대비 시민들의 울분 평균점수는 1.73에서 1.58로 낮아졌다. 그러나 사회·정치 사안에 대한 울분 점수는 3.45에서 3.50으로 높아졌다. 올해 조사는 지난 1월21일부터 2월3일까지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사회·정치적 울분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눈에 띄는 건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가 4위에서 2위로 올랐다는 것이다. 입학·고용 관련 특혜도 10위에서 8위로 올랐다. 1위는 직장·학교 내 따돌림과 괴롭힘, 차별, 착취로 2018년 조사 때와 같았다.
필자는 조사 내용 중 ‘자신에게 울분을 안겨주는 일’을 묻는 답변에 ‘결국은 어떤 노력을 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5위에 새롭게 등장한 것에 주목한다. 이것이야말로 울분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울분(embitterment)과 분노(rage)는 다르다. 분노는 분하여 몹시 성을 내는 거다. 2016년 겨울 타오른 촛불 민심의 동력은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였다. 이런 분노에 무력감이 겹친 감정이 바로 울분이다.
연구의 책임자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번 조사는 지난해 한국 사회를 관통한 정치적 갈등과 불공정에 대한 분노 등으로 사회 구성원의 울분이 높아졌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우리와 다른 나라의 ‘울분 점수’와 비교하면 어떨까. 유 교수 팀은 별도 조사에서 한국인 10명 가운데 4명이 일상생활에서 오래된 울분(외상후울분장애·PTED)을 겪고 있음을 밝혀냈다. 특히 극심한 울분이 전체의 10% 이상으로 이는 독일과 영국, 네덜란드의 4배가 넘는 수치라고 한다. 극심한 울분에 지속적인 울분을 더해 계산하는 ‘만성적인 울분’은 전체의 43.5%에 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