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위로다
트로트에 자꾸 끌린다
김철웅
2014. 12. 1. 16:48
노래 취향은 참으로 다양하다. 가까운 사람들의 애창곡을 보면 알 수 있다. 트로트, 포크, 발라드, 록, 댄스음악…. 하고많은 노래 가운데 그 사람이 유독 그 노래를 고르게 되는 이유는 뭘까.(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대중음악은 현재 36만곡이나 된다. 그중 리메이크 등으로 중복된 곡을 빼더라도 족히 10만곡은 되지 않을까 한다.) 중·노년층은 트로트, 젊은이들은 힙합이나 댄스음악, 그런 구분이 가능한가. 이런 세대별 구분도 하지만 이것도 법칙성이 있는 건 아니다.
음악 취향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이 문제를 뇌과학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있다. 인지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대니얼 레비틴은 음악적 선호도가 십대에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예로 든다. “많은 이들은 열네 살 때 들었던 노래들을 부르는 법을 여전히 기억한다. 왜 열네 살일까? 우리가 십대에 들었던 노래를 기억하는 부분적인 이유는 그 시절이 자기 발견의 기간이고 그래서 정서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편도체와 신경전달물질이 협력하여 이런 기억에 중요하다는 ‘꼬리표’를 달기 때문”이라며 “열네 살 무렵이 되면 음악적 뇌의 배선이 어른의 수준으로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레비틴의 연구를 ‘노래 취향은 대개는 십대에 형성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새로운 음악 취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점이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열여덟에서 스무 살 정도가 되면 각자의 취향이 완성된다”고 썼다.【주1】
남진
요컨대 어릴 때 들은 노래의 기억과 취향이 평생 간다는 말이다. 이를 잘 증명하는 것이 ‘구세대’의 트로트 취향이다. ‘구세대’를 일제 때 태어나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이라고 치자. 트로트 음악에 길들은 이들의 상당수는 1970년대 이후 나온 포크, 록, 댄스음악에 적응하는 데 굉장히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요즘 나온 노래들은 재미도 없고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도 없다”고 푸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역지사지하면 이것은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대부분 트로트 등 옛날 노래들에 대해 ‘구식이어서 재미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노래에도 세대차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의 1990년대를 두고 “1970년대 포크와 록을 경험한 세대가 구매력을 가진 중장년층으로 성장하며 기존의 음악적 세대를 구분 짓던 트로트 시장과 결별하게 되었음을 증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주2】새로운 노래를 듣고 성장한 세대가 자기 이전 세대의 트로트 같은 노래에 거부감을 갖는 것, 이건 트로트 세대가 포크를 못 이해하는 것처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예외는 항상 있다. 바로 이미 형성된 음악 취향이 변하는 경우다. 특히 트로트에 대한 취향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뀔 때가 많다.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의 어렸을 적 트로트에 대한 태도는 거의 혐오 수준이었다. 1961년생인 그는 “어린 시절 나는 송창식과 양희은을 좋아하면서도, TV에 나오는 남진이나 나훈아의 노래에는 그 유치함과 천박함에 몸을 떨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트로트 가수들에 대해 “촌스러운 쟤네들은 왜 자꾸 나오는 거야?”하고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주3】
그는 “1990년대의 젊은 층들에게 트로트 가요는 결코 슬픈 노래가 아니며 세련된 노래도 아니다.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 노래다. 이 양식은 ‘뽕짝’이라는 비웃음 섞인 명칭으로 불리며, 그 자체로 수준 낮은 것, 저질 등의 느낌을 수반한다”고 썼다.【주4】이영미는 그러나 모든 음악 양식을 불편부당하게 받아들이려고 십수 년 노력한 결과 “이제는 트로트에 대해서 감동하고 눈물 흘릴 정도가 되었다”고 말한다.【주5】그의 경우는 가요평론가로서 직업정신을 발휘한 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영애는 가수로서 트로트에 대한 취향이 바뀐 사정을 얘기한다. 그도 “트로트 하면 젊은 날에는 지루하고 따분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음악의 본질과 대중가요의 시작점을 고민했고 트로트를 찾아듣게 됐다. 그는 트로트가 좋은 이유에 대해 “첫째, 노랫말이 좋아 들으면 경건해진다. 둘째, 노래를 통해서 슬픔을 이겨내려는 감성이 좋다. 셋째, 트로트는 감정을 필터링해서 다음 감정을 드러내는 굉장히 정교하고 정갈한 노래다”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서로 비례된다”는 생각도 밝혔다.【주6】
그가 말했듯 트로트 취향은 나이와 관련 있는 것 같다. 젊을 때는 모르다가 나이 먹으면 좋아진다는 말이다. 이정선도 나이 얘기를 했다. “요즘은 트로트를 연습하고 있어요. 옛날 트로트 전주나 간주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젊었을 때 친 트로트는 흉내만 냈지 진짜 트로트가 아니었죠.”【주7】그는 그러면서 유명 기타교본 저자답게 기타 얘기를 했다. “제겐 남인수 선생의 <애수의 소야곡> 한 곡만 끝내주게 연주할 줄 아는 처삼촌이 계셨습니다. 정말 기타 치고 싶은 생각이 안 날 만큼 실력이 끝내줬던 분입니다.” 그랬다. 옛날엔 기타 칠 때 꼭 <애수의 소야곡>이나 <목포의 눈물> 전주를 배웠다.
애수의 소야곡 악보
#남인수 <애수의 소야곡> 1937
인터넷에서는 이런 글도 만날 수 있다. “얼마 전에 노래방을 갔을 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트로트의 소리가 왠지 모르게 흥겹다. 그래서 나도 막곡으로 트로트 한 곡 <영일만 친구>를 택해서 불렀다. 어린 나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트로트가 정겨워진다….” 신나는 트로트 댄스곡인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를 전형적인 트로트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이 젊은이도 나이가 들수록 트로트가 좋아진다고 한다.
어째서 지루하고 따분하게만 들리던 트로트가 점점 가슴에 와닿는 것일까. 이건 취향 변화 정도가 아니라 음악에 대한 미적 감각이 크게 바뀌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건 왜 일어나는 걸까. 나이라는 변수는 음악 취향에 어떻게 작용하나. 그런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여기에 명쾌한 설명을 찾기는 어렵다. 앞서 인용한 신경과학자 레비틴도 음악 취향의 형성 시기에 집중했을 뿐 취향 변화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트로트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도 이런 취향 변화가 주요 동력이 되기 때문 아닌가 한다. 취향 변화보다는 전향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포크송의 가장 뚜렷한 저항의 대상은 트로트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반트로트는 1970년대 포크송의 중요한 정체성이었다. 그만큼 포크는 일본식 트로트와 완전히 결별한 것이었다.【주8】그럼에도 상당수 뮤지션들이 트로트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다면 그건 대단한 전향이 아닌가.
나는 그 해답을 꼭 트로트에 국한시키지 않고, 옛날 노래가 좋아지는 심리에서 찾아볼까 한다. 유튜브에 오른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1995)에 이런 댓글이 달려있다. “옛날엔 애들 사이에서 피스라고 해서 가요 악보들도 문구점에서 많이 팔았는데, 잘못된 만남 뚱땅거렸던 기억 나네. 초딩 귀에 꽂힌 노래가 서른이 되어도 좋게 들린다는 건 명곡은 명곡임”(한지웅)
그는 초등학교 때 나온 <잘못된 만남>을 지금도 좋아한다고 말한다. 레비틴이 말한 바 ‘열네 살 때 들었던 노래’와 통하는 얘기다. 나는 개인들이 이처럼 옛날 들었던 노래를 한국사회 전체로 확대하면 훨씬 과거의 노래들까지로 소급될 수 있다고 본다. 그 과거에 위치해 있는 게 트로트다. 트로트는 1930년대부터 만들어져 불린, 가장 오래된 대중가요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음악적 집단체험이자 원체험 같은 것이다. 이는 문화·전통 또는 향수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이 잠재돼 있다가 때가 되면 표출되는 것, 그걸 취향 변화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취향 변화는 고리타분해지는 게 아니라, 원체험과 친숙해지는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들은 태교 음악이 나중에 정서적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그럼에도 트로트는 끊임없이 비판받고 있다. 뭐가 문제길래? 그 단순성, 신파성, 왜색성 때문이다. 첫째, 리듬, 선율, 화성이 매우 단순하다. 트로트 리듬은 ‘쿵짝, 쿵짝’으로 진행하는 빠른 2박자가 기본이다. 여기서 트로트의 비하적 어감의 이름 ‘뽕짝’이 유래했다. (초기 트로트에는 <황성의 적> 같은 3박자 곡도 더러 있었다.) 선율도 단순하다. 단조의 경우 대부분 ‘레’와 ‘솔’을 빼고 ‘라시도미파’ 다섯 음만 쓴 애상조의 선율이 특징이다. 화성적으로도 주요 3화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둘째, 가사도 애상적이다. 트로트의 정서를 두고 신파적(新派的)이란 말을 많이 한다. 지금 신파는 고리타분하다는 뜻으로 통한다. 신파극은 일제강점기에 유행한 연극이다. 일본 특유의 비장미, 주인공의 파멸 등의 결말 처리가 특징이며 등장 인물들이 괴롭고 우울하고 습관적으로 울어댄다. 이게 꼭 트로트의 정서와 닮았다는 말이다. 여기엔 일제의 강압에 저항하지 못하는 무기력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셋째, 트로트의 단음계는 일본의 요나누키 단음계와 같으므로 왜색이라 할 수 있다. 요나누키(四七拔き)는 일본어로 ‘4와 7이 빠진’이라는 뜻이다. 라가 으뜸음인 단음계에서 4, 7음은 ‘레’와 ‘솔’이다. ‘라시도미파’, 우리 전통음악엔 이런 음계가 없었다. 따라서 이 음계는 일본 엔카(演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트로트의 결정적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노래가 단순하다는 건 개성이 될 수도 있다.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선율·화성만 좋은 게 아니니까. 밥 딜런이 부른 포크의 전설적 명곡 <Blowing In The Wind>(1963)는 음악 구성이 아주 단순하다. 게다가 딜런이 달랑 기본 3화음 코드만을 사용해 기타 반주를 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아마추어 정신을 추구하는 펑크록도 일부러 ‘쓰리 코드’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주9】
장사익
트로트가 신파적 비애감에 빠져있다는 비판도 지나치다.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가요에서 눈물과 탄식은 빠지지 않는다. 그것이 서민의 애환을 대변하고 위로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중음악은 기본적으로 고상할 필요가 없는 예술이다. 가요의 역설은 심오함보다는 유치함이 강점이란 사실이다. 쉽고 친근하고 때론 천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요를 좋아한다.
장사익 <동백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