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칼럼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
김철웅
2013. 1. 1. 21:48
지난해 말 황석영의 소설 <객지>(1971년)를 다시 읽었다. 갑자기 떠오른 이 소설 마지막 문장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 때문이었다. 대선 직후부터 이 말이 좀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이듬해에 발표된 이 소설을 옛날보다 꼼꼼히 읽었다.
<객지>는 작가의 28세 때 작품임에도 사실적이고 긴박한 문체로 노동자들의 투쟁을 묘파해 한국 노동문학의 고전이 됐다. 헤밍웨이도 1926년 27세에 첫 장편 <해는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로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소설은 1차 세계대전 후 파리 등을 배경으로 저마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취해 흐느적거리는 ‘잃어버린 세대’의 허무감을 잘 그렸다.
<객지>의 줄거리는 이렇다. 1960년대 운지 바닷가 간척 공사장. 젊은 주인공 동혁과 대위란 별명의 사내 등은 너무 낮은 임금과 비인간적 처우에 분노한다. 공사장은 온통 착취구조다. 십장·감독들은 전표장사나 돈놀이를 하고 함바(노동자 합숙소, 현장식당)는 함바대로 돈을 빼먹는다. 회사는 깡패들로 감독조를 만들어 노동자들의 불만을 억누른다. 동혁은 국회 답사단이 오는 때에 맞춰 쟁의를 벌이려 한다. 그러나 우발적 사건 때문에 예정보다 빨리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선다. 회사는 속임수로 이들을 동요하게 만들고 결국 쟁의는 실패로 돌아간다.
서두에 말한 소설 마지막 문장은 이런 이야기 끝에 나온다. 노동자들은 농성하던 독산에서 모두 내려가버리고 동혁만 남는다. 여기서 그는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고 혼자서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