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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지도자의 탄식 

때로는 국가 지도자도 탄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항(陋巷)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내뱉는 탄식과는 다르다. 달라야 하며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책임감이다. 가령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 자녀를 꾸짖고 벌 주는 것은 항용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가정사가 잘못된 것을 개탄하며 ‘콩가루 집안’ 같은 표현을 썼다면 문제가 좀 다르다. 가장은 가정사를 직간접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인데 ‘콩가루 집안’이란 탄식엔 그런 책임의식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하는 탄식이라면 격이 달라야 한다. 탄식에 무슨 격이냐 하겠지만 책임감과 자기성찰이 묻어나야 한다는 뜻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DB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주말 장차관 수십명을 모아놓고 “나라 전체가 비리투성이”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름하여 민생점검 및 공직윤리 확립을 위한 장차관 워크숍에서다.
그는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라며 터져나오는 공직 비리와 부처 이기주의를 비판했다. “각계 원로들 얘기를 들어보니 국민들에게는 온통 썩은 나라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는 말도 했다. 교육과학기술부 공무원들이 과장만 되면 대학 총장들을 오라가라 한다고 했고,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문제로) 싸우는 걸 보니 한심하다고도 했다. 

그런데 30여분에 걸친 그의 장탄식 어느 곳에서도 지도자로서 일말의 책임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 “모든 게 이해당사자들만 아니라 국가기관까지 그렇다”고 질타하면서 “나는 지금도 임기 초란 기분으로 일한다”고 차별성이 강조됐다.

그가 국정에 대해 남 얘기하듯 탄식한 건 생소한 게 아니다. 취임 1년쯤 지나 용산참사 시위대에 경찰이 폭행당했을 때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라고 개탄하며 “선진 일류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공권력이 확립돼야 한다”고 공권력 훼손 엄단 지침을 하달했다.
아무래도 정치·도덕적 성찰과 책임의식은 이 최고경영자 출신 대통령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덕목 같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끊임없이 정치를 정략과 동일시하며 ‘여의도 정치’와 자신을 분리하는 이상한 행보를 해 왔다. 

 
2003년 최병렬 한나라당 신임 대표는 국립현충원을 찾아 방명록에 ‘흔들리는 나라, 바로잡겠습니다’라고 썼다. 노무현 정권 때의 일로, 야당 대표로서 나름의 책임의식은 느낄 수 있었다. 나라 전체가 비리투성이”란 대통령의 말엔 그런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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