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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도발과 응징만으로 어찌 관계를 풀겠나

성인이 아니고서야 한 대 맞으면 맞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법이다. 그래야 직성(直星)이 풀린다. 개인들 사이만 아니다. 보복심리는 국가 간에도 발동한다. 북한의 연평도 무력 도발에 대해 “북의 못된 버릇은 강력한 응징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주장도 인지상정의 발로일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2001년 미증유의 9·11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은 국민적 분노로 들끓었다. 언론은 ‘미국이 공격당했다’고 흥분했다. 미국 본토가 외부로부터 처참한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즉각 이 테러에 대한 보복을 천명하고 이를 ‘21세기 첫 전쟁’으로 규정했다. 곧장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빈 라덴이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전쟁에 들어갔다. 애국주의의 열기 속에 보여준 단호한 대처 덕에 부시의 인기는 치솟았다. 

당시 미국의 열광적 분노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미국이 딱 절반만 좋다>의 저자 이진이 미국에서 TV토론을 보는데 진보적 잡지 ‘더 네이션’의 여기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누구’보다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다”라고 발언했다.

응징보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는 뜻이었다. 그러자 TV를 보던 한 노신사가 흥분해 “빨갱이 같은 ×”이라 소리쳤다고 한다. 이성적 대응을 주문해 봐야 먹히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거다. 그렇게 시작한 전쟁이 9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부시는 최악의 지지율과 전범 비판 속에 정권을 민주당에 넘기고 퇴장했다. 

천안함 사건에 숱한 의문점이 있는 것과 달리 연평도 사건은 명백한 북한의 도발이다. 이 때문에 당시 우리 군이 충분하게 응징할 기회를 놓친 것이 이런 사태를 빚은 원인이라며 이번에야말로 강력히 응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북이 대남 도발을 일삼는 데도 물리적 응징을 못해 이런 사태에 이르게 됐다고도 한다. 

확실히 위기 국면에선 강경론에 눈길이 쏠린다. 온건론은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강경론, 보복 응징론이 능사가 아닌 건 장기적 전망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왜’란 성찰이 빠진 집단적 분노가 위험한 것을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보여주었다.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라지만 이건 투견판이 아니다. 이성적 국가가 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